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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눈 마주치면 손 풀리는 여성, 라틴댄스 추면 안 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52)

남자가 처음 보는 여성의 손을 잡으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뺨을 맞거나 성추행범으로 끌려갈 일이다. 그러나 춤판에서는 남자가 여성의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춤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댄스는 남녀가 서로 어떻게 춤출 준비를 할지 서는 자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픈 포지션'과 ‘클로즈 홀드’다. 오픈 포지션에서는 홀드 없이 떨어져 서는 오픈 포지션 자세도 있고 한 손만 잡는 오픈 포지션도 있다. 클로즈 홀드에서는 남성의 왼손은 여성의 오른손과 맞잡고 남성의 오른손은 여성의 등 뒤를 살포시 감싼다. 춤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상당히 부러워 보일 것이다.

춤판에서는 남자가 여성의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춤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춤판에서는 남자가 여성의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춤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요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댄스 강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 댄스나 배우며 풀어보자는 의도였다. 소질 있어 보이는 간호사 한명을 시범 조교로 해서 한창 차차차를 클로즈 홀드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누군가 나타나 내 뒤통수를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 환자 중의 한 명이 당장 꺼지라며 고함을 질렀다. 직원은 나랑 홀드하고 있던 간호사가 그 환자가 평소 좋아하던 사람인데 외부에서 와서 춤을 가르친다며 내가 붙잡고 있으니 화가 난 것이니 이해하라고 했다.

오픈 포지션은 주로 라틴댄스에서 사용하는 홀드 방식이다. 떨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성의 왼손으로 여성의 오른손을 손가락끼리 말아 쥐고 엄지만 여성이 손등에 올려놓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텐션을 느끼며 춤을 추는 것이다. 이 홀드 방식은 불경스러울 것이 없다. 남녀가 서로 손을 잡으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춤을 출 때는 그런 느낌까지는 들지 않는다. 손바닥은 원래 둔감한 편이고 손가락을 말아 쥔 것도 손바닥 쪽이다. 엄지손가락 하나가 여성의 손등에 닿는다고 해서 이상한 느낌이 확 오지는 않는다.

클로즈 홀드는 라틴댄스에도 사용하지만, 스탠더드 댄스에서는 항상 사용하는 홀드 방식이다. 라틴댄스에서는 클로즈 홀드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떨어지지만, 스탠더드 댄스에서는 갈비뼈 하단 쪽을 근접시켜야 한다. 그래서 보기에는 너무 붙은 것 같아 민망해 보인다. 그러나 역시 한손은 서로의 손바닥을 잡은 것이라서 느낌이 둔감하다. 다른 한손도 남성은 여성의 등, 여성은 남성의 어깨에 손을 댄 것이므로 직접적인 피부 접촉은 없다.

라틴댄스에서는 클로즈 홀드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떨어지지만, 스탠더드 댄스에서는 갈비뼈 하단 쪽을 근접 시켜야 한다. 그래서 보기에는 너무 붙은 것 같아 민망해 보인다. [사진 pxhere]

라틴댄스에서는 클로즈 홀드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떨어지지만, 스탠더드 댄스에서는 갈비뼈 하단 쪽을 근접 시켜야 한다. 그래서 보기에는 너무 붙은 것 같아 민망해 보인다. [사진 pxhere]

어쨌든 춤을 추려면 남녀가 손을 붙잡아야 한다. 이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양(陽)과 음(陰)의 조화다. 남성을 양, 여성을 음이라 했을 때 춤은 양과 음이 만나는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조물주는 그런 원리로 암수를 창조해 놓았다.

젊은 시절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철조망을 치고 100% 남성만으로 일하고 있었다. 급사도 남자 직원이고 식당 조리사도 모두 남자뿐이었다. 고국에서 연예인 위문 공연을 와도 남자 가수만 왔다. 금녀의 구역이었던 것이다. 3개월쯤 지나자 직원들이 하나둘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 향수병을 겸해 정신 건강이 피폐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고 눈동자가 풀어져 보였다. 이유 없이 펑펑 우는 사람도 나타났다. 쇼핑센터에서 노래 CD를 사더라도 남자 가수 노래는 안 사고 여성 가수 노래만 샀다. 한 번은 일과 후 외출 금지령을 내렸더니 직원들이 감시망을 뚫고 인근 쇼핑센터에 갔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다. 뭘 사러 나갔느냐고 묻자, 배가 고파서 햄버거 사 먹으로 나갔다고 해 건설 현장에 햄버거를 특별 간식으로 추가 지급하기도 했으나 무단 외출은 계속되었다. 솔직한 대답은 햄버거가 아니라 쇼핑센터에서 마주치는 여성을 보기 위함이었다. 남녀의 스킨십은 그래서 꼭 필요한 것으로 이해했다.

국내 댄스대회장에 가보면 가끔 남녀 커플이 아닌 여여 커플로 나온 경우를 볼 수 있다. 남성이 워낙 모자라다 보니 여자끼리 커플이 되어 나온 것이다. 춤추는 남자가 워낙 귀해 생긴 편법이다. 동료들끼리도 있고 한 사람은 강사, 한 사람은 수강생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내대회도 여여 커플은 라틴댄스에서만 허용되고 스탠더드 댄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스탠더드 댄스는 아무래도 남녀 커플이 되어야 춤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댄스를 강습하다 보면 ‘아이 콘택트’를 하라는 데도 눈만 마주치면 손을 풀면서 도저히 못 하겠다는 여성이 종종 있다. 라틴댄스는 서로 눈을 마주 봐야 눈빛으로 소통이 된다. 보기에도 좋다. 그런데 도저히 서로 눈을 마주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서로 얼굴을 외면하고 추는 스탠더드 댄스가 낫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스텝이 엉키는 것이 탱고”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사진 영화 '여인의 향기' 스틸]

영화 ‘여인의 향기’에 “스텝이 엉키는 것이 탱고”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사진 영화 '여인의 향기' 스틸]

나이가 지긋한 시니어는 학창시절에 남녀가 분리된 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도 남녀가 같이 모여도 어색해한다. 남녀공학을 경험한 사람은 훨씬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댄스를 배운 사람은 남녀관계에서 아주 자연스럽다.

알파치노가 나오는 영화 ‘여인의 향기’를 보면 앞이 안 보이는 남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여인의 향기를 맡고 다가가서 춤을 제의한다. 여인의 향기는 여인이 사용한 향수나 비누 냄새였을 것이다. 이 장면이 유명한 탱고 추는 장면이다. 처음 대하는 여인이지만, 여인은 탱고도 못 춘다면서 남자의 춤 제의에 응한다. 그리고 박수를 받을 만큼 멋지게 춘다. 여인이 춤출 줄 모른다고 하자 “스텝이 엉키는 것이 탱고”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춤은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몸을 맡겨야 좋은 춤이 된다. 남자의 리드를 받기 위해서는 홀드는 불가피하며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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