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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쓴지 모르는 헬멧 써라? 뻔히 안먹힐 전동킥보드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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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서 선보인 헬멧이 비치된 공유형 전동킥보드. [연합뉴스]

서울 강남에서 선보인 헬멧이 비치된 공유형 전동킥보드. [연합뉴스]

 "어 저게 뭐지?"

 얼마 전 서울 강남에서 특이한 공유 전동킥보드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공유 킥보드와 달리 헬멧(안전모)이 달려 있었는데요.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달 초 서울 강남 일대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외국계 업체의 제품이었습니다.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과거 서울 등 일부 공공자전거에서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 공용 헬멧을 비치해둔 적은 있지만, 공유 전동킥보드에선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이례적으로 헬멧을 제공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 회사 고위 관계자가 몇몇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찾아보니 "한국에서 공유 킥보드 규제가 엄격해진 것을 보고 진출을 결심했다. 우리는 안전이 강점"이라고 말했더군요. 다음 달 13일부터 시행되는, 대폭 강화된 전동킥보드 규제를 염두에 둔 거로 해석됩니다.

 다음 달 13일 강한 킥보드 규제 시행   

 실제로 앞으로 적용될 전동킥보드 규제는 종전과 비교하면 강도가 상당히 세졌습니다. 전동킥보드로 대표되는 PM(Personal Mobility, 개인형 이동수단)을 도로교통법상 교통수단에 포함하면서 안전규정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인데요.

 [자료 도로교통공단]

[자료 도로교통공단]

 앞서 먼저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지난해 말 시행되면서 불거진 문제점도 해소했습니다. 당시 운전면허 의무규정이 사라지면서 공공자전거와 마찬가지로 13세 이상부터 공유 킥보드 이용이 가능해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용 연령이 대폭 낮아진 탓에 사고 위험이 커졌다는 지적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다음 달 13일부터는 원동기면허 이상을 소지해야만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습니다. 이용 가능연령을 다시 원동기면허 응시자격이 있는 나이(만 16세)까지 올린 겁니다.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탔다가 적발되면 20만원 이하의 범칙금을 내야 합니다.

 헬멧 미착용 땐 20만원 이하 범칙금  

 헬멧을 안 쓰고 전동킥보드를 탈 때도 범칙금을 물립니다. 현재 전동킥보드 이용자의 80% 이상이 헬멧을 쓰지 않아 안전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란 설명인데요. 실제 범칙금은 자전거와 유사한 수준(1~3만원)이 될 것 같습니다.

헬멧을 안 쓰거나 인도로 주행하면 범칙금이 부과된다. [연합뉴스]

헬멧을 안 쓰거나 인도로 주행하면 범칙금이 부과된다. [연합뉴스]

 또 거리를 나가보면 연인끼리, 친구끼리 한 대의 킥보드에 동승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승차정원(1명) 초과로 단속대상이며, 역시 범칙금이 부과됩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새로 법이 시행되는 대로 관련 규정에 따라 위법 행위는 모두 단속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자전거도로나 차도가 아닌 인도로 다니거나 음주 상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는 경우도 처벌 대상입니다. 이런 규정들이 제대로만 지켜지고, 또 단속이 이뤄진다면 전동킥보드로 인한 시민 불편과 민원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거로 생각됩니다.

 연인, 친구끼리 동승하면 정원 초과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규정도 눈에 띕니다. 헬멧 의무화가 대표적인데요. 몇 년 전 자전거 사례를 보면 헬멧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서울 등 몇몇 지자체에서 공공자전거에 공용 헬멧을 비치해 둔 적이 있습니다.

전동킥보드에 두명 이상이 동승하면 정원초과로 단속된다. [뉴시스]

전동킥보드에 두명 이상이 동승하면 정원초과로 단속된다. [뉴시스]

 그러나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탓에 위생에 대한 우려가 컸던데다 상당수가 분실되면서 지금은 공공자전거에서 헬멧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또  헬멧을 안 썼다는 이유로 자전거 이용자를 단속하는 경우도 극히 드문데요. 사실상 관련 규정이 유명무실해진 겁니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의 헬멧 의무화도 상황이 비슷할 거로 전망합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공유 전동킥보드를 타면서 헬멧은 개인적으로 갖고 다니라는 규정은 비현실적이다. 설령 공유 헬멧이 있다고 해도 위생 때문에 이를 쓰려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전거 헬멧 의무화도 유명무실"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의 차두원 소장도 "연령 기준 없이 일괄적으로 헬멧을 쓰도록 한다면 자전거의 전철을 밟게 될 게 뻔하다"며 "연령대를 구분하는 외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차 소장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주, 영국 등에서는 18세 이하에만 헬멧 의무화를 적용 중입니다.

 이 때문에 실제 착용과 휴대가 간편한 웨어러블(wearable) 형식의 안전기구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교통공학연구처장은 "평소에는 머플러처럼 매고 있다가 사고 때 에어백같이 팽창해서 머리를 보호해주는 기구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말 경찰이 전동킥보드의 위법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중앙일보]

지난해 말 경찰이 전동킥보드의 위법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중앙일보]

 단속의 형평성도 우려됩니다. 경찰은 단속을 예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인데요. 경찰 관계자는 "경찰 교통 외근이 3000명인데 일평균 근무자는 1000명이 채 안 된다. 이 인력으로 그 넓은 지역을 다 담당하기는 사실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공유 킥보드만 해도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6~7만대, 서울에만 4만대가량이 있는 거로 추정됩니다. 잠재적인 단속 대상이 절대 적지 않다는 의미인데요.

 이용법 홍보와 철저한 단속·계도 절실 

 규정 위반으로 단속이 되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다 어기는데 왜 나만 붙잡느냐"는 항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잘못해서 단속됐다기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을 거로 생각됩니다.

[자료 도로교통공단]

[자료 도로교통공단]

 결국 규정은 전보다 훨씬 강화됐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또 위반행위에 대한 단속도 효율적으로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법 시행 초기에 제대로 분위기를 다잡지 못한다면 전동킥보드와 보행자, 그리고 차량 간의 갈등은 계속 이어질 거란 점입니다.

 실제로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사망자 역시 늘고 있습니다. 전동킥보드의 인도 주행에 대한 민원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전동킥보드의 바른 이용법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철저한 위반 행위 단속과 계도 계획도 서둘러 준비해야 합니다. 달라진 단속 규정과 정확한 이용법을 숙지하려는 전동킥보드 이용자의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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