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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성과? 지금 자랑하는 건 넌센스. 몇 년은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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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神農). 고구려 오회분 5호묘 벽화. [중앙포토]

신농(神農). 고구려 오회분 5호묘 벽화. [중앙포토]

중국 고대 설화에 따르면 삼황이 있었다.
복희씨(伏羲氏)는 사냥과 불을 가르쳤고, 신농씨(炎帝神農氏)는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마 소도 키웠을 것이다. 삼황의 마지막 자리는 헌원씨(軒轅氏)로 글자와 의학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한의학의 원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저자라는 설도 있다.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인류가 불의 사용과 농사, 가축 등 정착 생활로의 발전 단계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감염병과 조우하게 됐다는 점을 암시한다.

『감염병 인류』 저자 인터뷰 #"K-방역 과신은 코로나19 해결에 무용" #"팬더믹은 이제 시작. 감염병 이해 중요"

신간 『감염병 인류』는 이러한 신화, 종교, 역사 등에 남겨진 단서들을 파고들면서 인류와 감염병의 오랜 관계를 되짚어 보는 책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아테네, 14세기 유럽 흑사병, 종교에서 금기하는 음식의 배경 등 다양한 줄기 속에서 찾아내 전달하고 있다.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저자들의 약력이 흥미롭다.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는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인지종교학자인 구형찬 박사는 서울대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코로나19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이로 인해 정작 감염병 본질과는 무관한 사회문화적 문제들이 불거지고 집단 간 갈등이 심화하는 것을 보면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는 이들을 7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간 『감염병 인류』 [사진 창비]

신간 『감염병 인류』 [사진 창비]

인지종교학자 구형찬 박사(왼쪽)와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 [사진 구형찬, 박한선 박사]

인지종교학자 구형찬 박사(왼쪽)와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 [사진 구형찬, 박한선 박사]

-코로나19로 미국에선 아시안 폭력 등 인종차별로 확대된다는 우려가 있다.
=전염병이 사회의 소수자를 고립시키고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사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한창이던 1349년 2월 14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끔찍한 일이 있었다. 약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공동묘지로 끌려가서 즉결심판을 받았다. 흑사병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처참하게 살해됐다. 사실 그곳은 흑사병 피해는 크지 않았는데, 흑사병보다 더 혐오한 대상이 유대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시그널을 느끼나
=초기에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집단발병하자 대구가 최초 발원지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 있었다. 이후 이태원 클럽, 택배 물류센터, 외국인 노동자, 개척교회, 정신병원  등이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이 뭇매를 맞는 건 슬픈 현실이다. 해결이 안 되니까 지치고 혐오 반응이 공고해진다. 연예인들이 마스크를 안 쓴 채 사진이 찍히면 잡아먹을 듯이 몰아세우지 않나. 점차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프랑스 엘리앙에서 흑사병 피해자를 매장하는 장면을 그린 19세기 영국 판화 (부분). 『잉글리시 일러스트레이션, ‘60년대’: 1855-70』에 실렸다.

프랑스 엘리앙에서 흑사병 피해자를 매장하는 장면을 그린 19세기 영국 판화 (부분). 『잉글리시 일러스트레이션, ‘60년대’: 1855-70』에 실렸다.

-정부나 사회 일각에선 K 방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세계 역사에서 2차 팬더믹으로 인정하는 사례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다.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인 1억명이 죽었다. 2차는 14세기 유럽의 페스트, 3차는 인도에서 시작한 아시아 콜레라다. 짧아도 몇 년, 길면 수백 년을 유행했다. 2년 만에 종식된 스페인 독감과는 다르다. 팬더믹은 이제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서 세계가 ‘한국의 방역을 보고 부러워한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보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소위 ‘K-방역’을 찬양하려면, 몇 년 이상 천천히 지켜보아도 늦지 않다. 또 K-방역이라는 것이 외국과 다른 유니크한 의료법이나 예방법을 가진 것도 아니지 않나. 굳이 말하자면 국민들이 잘 따라줬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K-방역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도리어 외국인이나 소수자에 대한 국가주의적 혐오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하면 곧 퇴치했을 텐데…'라며 비난과 미움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핼러윈 데이(Helloween day)를 앞둔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 입구에 출입금지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뉴스1]

핼러윈 데이(Helloween day)를 앞둔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 입구에 출입금지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뉴스1]

-중국에서 시작됐으니 '우한 코로나'로 부르면 왜 안 되냐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에도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 등 질병이 유행한 지역의 이름을 붙이는 관행이 있었다. 사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노로바이러스는 오하이오주 노워크(Norwalk)라는 지명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특정 집단의 이름도 쓴다. 레지오넬라병은 미국 재향군인회의 총회에서 유행이 시작되어 붙은 명칭이다. 한때 한국에서 유래한 한탄 바이러스는 ‘우리’ 이름이 붙은 ‘토종바이러스’라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예전엔 이런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교류가 잦아지고,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됐다. 그래서 2015년부터 WHO에서 특정 지명과 연계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코로나 19 시대에 역사에서 교훈으로 삼을만한 사례가 있을까
=스페인 독감이 미국에서 유행했을 때 필라델피아와 샌프란시스코의 대응방향이 정반대였다. 필라델피아에서는 흑인 등 특정 집단은 포기하고 '괜찮다, 안심하라'는 공허한 메시지 남발했고, 결국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반대로 샌프란시스코는 거리 두기와 셧다운을 하고, 보이스카우트 등이 도시락을 싸서 식사하러 나오기 어려운 감염자들을 도왔다. 사회적 결속과 협력이 감염병 재난을 해결하는 핵심이다. 구성원의 그런 의지를 모으고 결속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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