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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文, 외치도 난제…김정은 호응도, 스가 결단도 어려워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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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사퇴를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사퇴를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뉴스1

7일 재ㆍ보궐 선거 참패로 비롯된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내치뿐 아니라 외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주요 외교 현안의 당사자인 상대국들도 레임덕 위기를 맞은 문 정부와 중요한 사안을 진전시키거나 매듭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北 ‘남한 패싱’ 심해질 듯

북한은 이미 일찌감치 임기 말을 맞은 문재인 정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달 16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한ㆍ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이번의 엄중한 도전으로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며 ‘임기 말기에 들어선’이라고 콕 짚어 비아냥거렸다.  
사실 2019년 2월 북ㆍ미 정상 간 ‘하노이 노 딜’ 이후 북한은 한국을 사실상 ‘패싱’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제재 유연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등 남북관계 과속 우려에도 북한에 크고 작은 협력을 제안했지만, 모두 무시당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재ㆍ보선 패배로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할 경우 북한은 문재인 정부와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더 굳힐 가능성이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국제관계의 동력은 국내정치에서 나온다는 건 외교의 불문률이고, 특히 남북관계는 청와대에 대한 국내정치적 지지가 강할 때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법”이라며 “북한도 정권 교체기에는 선을 긋기 때문에 이제 한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북한도 정권 교체기엔 선긋기”

특히 북한이 한국에 기대하는 역할은 제재 해제 문제 등에서 본인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것인데, 미국 정부가 조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되며 현실적으로도 이는 더 어려워졌다. 북핵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풍부한 전문 관료들이 북핵 문제를 주도하는 만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달리 어설픈 합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가 확고한 목표이며, 우리는 물론 제재를 계속 이행해나갈 것”이라며 “비핵화로 가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일부 외교적 방식에도 준비돼 있다”고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日 관계 개선 ‘대승적 합의’ 꺼릴 듯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는 문재인 정부의 한ㆍ일관계 개선 드라이브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당초 정부의 구상은 꼬일대로 꼬인 한ㆍ일 관계를 풀기 위해 양국 지도자가 대승적 결단을 통해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었다고 한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핵심은 양국이 과거사 갈등을 봉합하고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협력하며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었던 것으로 안다. 특히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은 납북자 문제에서,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에서 성과를 내고 한ㆍ일이 함께 미국의 대북 관여를 유도하자는 취지였으며, 실제 일본 측에도 이런 생각을 전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日, 정권 따른 합의 뒤집기 이미 경험”  

하지만 일본은 한ㆍ일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해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을 접지 않았고, 한국이 과거사 문제 등에서 먼저 전향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 또 정부가 염두에 뒀던 도쿄 올림픽 구상도 북한이 불참을 선언하며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여기에 더해 이번 선거 참패로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하며,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결단을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제 임기를 1년여 남기고 레임덕을 앞둔 문재인 정부에 일본이 먼저 손을 내밀거나 도박에 가까운 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며 “특히 일본은 박근혜 정부 때 맺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던 위안부 합의가 정권의 부침에 따라 무력해지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일본 측이 먼저 움직일 동력도 없고, 그럴 만한 신뢰 관계도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오태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오른쪽)이 2017년 12월 27일 TF 검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오태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오른쪽)이 2017년 12월 27일 TF 검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겹겹 외교 난제, 결국 미제로 남나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현안들을 임기 5년차까지 끌고 온 끝에 레임덕을 맞으며, 문재인 정부의 여러 외교적 숙제들은 결국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현정부 내에서 촉발된 문제들은 임기 종료 전 수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철희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가 결국 사법의 영역에서 결론맺어지도록 방치한 것이나 위안부 합의를 파국으로 몰고간 것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에 이를 방치한 채 다음 정부에 최악으로 떨어진 한ㆍ일 관계를 물려주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또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계와 깊은 연계를 갖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최대한 넓혀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ㆍ정진우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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