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도를 묻는 제자들에게 그는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 아무리 석가모니지만 요즘 이런 방식의 수업이면 곤란하다. 학기말 강의평가가 좋지 않을 것이다. 학생공감 능력이 부족하더라, 문장구성 능력이 없는 것 같더라, 묵묵부답을 염화시중으로 포장하고 있더라.

아름다운 도시는 공정 사회의 도시 #선거는 현자를 다수결로 뽑는 제도 #다수 이익 대변의 선거는 중우정치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도시여야

비루한 건축 전공 선생에게 이번 제자는 도가 아니고 도시를 물었다. 어떤 도시가 아름답습니까. 속세의 선생은 연꽃무늬 막걸리잔을 들어 답했다. 공정한 사회가 만드는 도시가 가장 아름다우니라. 그런데 혹시 이건 동문서답은 아닌지.

대중 건축강의에서도 역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떤 도시가 아름다운 도시인가요. 그 배경에는 우리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는 경험적 전제가 깔려있다. 그리고 선망 대상에는 외국의 어떤 도시들이 있겠다. 그 도시들의 공통점을 모으면 선진국 도시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쩌다 선진국이 되었을까.

지금부터 건축의 영역을 넘지만, 답을 추리자면 이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슷한 환경에서 시작된 사회를 비교해보자. 아메리카 대륙 남북에 유럽 각지에서 침략자, 이주자들이 각각 정착해나갔다.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들은 대개 신교도하고도 지독한 골수 칼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종교자유 갈구와 절대가난 도피가 이주의 추동력이었다. 선행하면 천국 가느냐는 질문도 이들은 신과의 무엄한 거래시도로 간주했다. 구원에 관한 신의 뜻을 한낱 너희가 알 길이 없으니 남은 것은 극단적으로 성실·청빈하라는 강령이다. 모두의 성실·청빈한 이승 생활을 위해 이들은 권력 균분의 제도를 고안해냈다. 민주주의 신념으로 무장한 국가를 세운 것이다.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들의 목적은 물질적 기회 획득이었다. 돈만 있으면 면죄부를 사서 천국도 얻을 수 있는 구교 국가 출신이었고 신 외에 신분도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새 대륙에서 만든 사회는 인종·종교·신분의 기득권이 충실하게 엮인 유기적 조직체에서 출발했고 공식 이면에 비공식이 깔려있었다. 그게 결국 지금 빈부격차 극심한 중남미의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신기해서 가본다는 곳.

제자들이 다시 묻는다. 아름다운 도시를 위해 무얼 어찌하오리까. 건축 선생이 다시 답하니 시장을 잘 뽑아야 한다. 석가모니와 비슷한 시대 그리스의 선생은 가장 지혜로운 자(philosophos)가 통치하는 사회를 꿈꿨다. 선거는 입후보자 중 누가 가장 지혜로운지 판단하는 다수의 결정이다. 그러나 선거는 왜곡의 위험이 있으니 다수 이익의 대변자 선택과정으로 몰락하는 것이다. 위대한 현자가 중우정치라고 걱정한 그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선거는 이를 훨씬 지나쳐 입후보자 중 누가 진정 부패·부정·부도덕의 화신인지 결판내자는 결투장이 되어버렸다. 선거의 승자는 지혜의 실현자가 아니고 승전 권력의 행사자가 되었으며 다수의 뜻이라고 소수의견을 묵살하곤 했다. 그래서 공평해졌다고.

다수결 원칙으로만 운영되는 사회의 도시에는 숫자만 남는다. 지금 한국의 사회 화두는 주거이되 그 관심사는 오로지 숫자다. 도시 사안은 참으로 복잡하여 규정방법이 다양무쌍하되 규정방법에 따라 누구든지 소수에 속할 수 있다. 누구든 환호와 절규의 주체가 된다. 대안은 사업단위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사업이 클수록 소수의 절규가 커진다.

한국의 각종 사회지표는 북아메리카에서 수입한 민주주의를 운전하여 남아메리카의 사회구조에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민주주의 발명국에서도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며 정치인 신뢰도는 자동차딜러 바로 위에 있다는 것 정도겠다. 참고로 미국에서 자동차딜러의 신뢰도가 각종 직업군 중 꼴찌다. 좌절이라면 한국에서는 그 순서마저 뒤집혀 있겠다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스스로 공정하다고 확신한 적도, 도시가 아름답다고 자신한 적도 없다. 그래서 피해의식의 지자체장들이 기이한 거대건축사업을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도시의 가치를 사진 속에서 찾으면 곤란하다. 도시는 인공의 유기체다. 도시는 일상의 현실이되 모두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간단히 말하자면 휠체어, 유모차가 차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으면 그 도시는 아름답다. 속세의 비루한 건축 선생이 단언하건대 나는 사회적 소수가 차별받거나 무시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를 본 적이 없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선전하는 평양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거기서 장애인 배려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 선거가 끝났다. 지자체장 선거인데 엉뚱하게 정권수호·정권심판이라는 구호의 청룡언월도가 난무했다. 당선의 근거가 덜 부패해서인지, 더 지혜로워서인지 지금 알 길은 없다. 지혜로운 분 석가모니는 기꺼이 전륜성왕의 길을 버린 분이었다. 그는 옥좌가 아니고 돌바닥에 앉은 분이셨고 심판이 아니라 자비의 선생이었다. 우리가 그 지혜에 이를 길은 없겠으나 그를 흠모할 수는 있겠다. 이 아침에 보도되는 당선자가 임기 말에 지혜로운 시장으로 기억되기 바랄 뿐이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