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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바뀌든 말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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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요즘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 아는 것 없죠?”

예상치 못한 순간 묵직한 팩폭(팩트 폭격)이 날아들었다. 4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국회에서 줄다리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경제 전문가인 A교수와 대화하다가 때아닌 한 방을 맞았다.

‘나의 무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다른 기자를 두고는 왜?’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힌 순간 A교수가 다행히 말을 이어갔다. “힘센 여당이나 청와대에서 다 결정을 해버리는데 기재부 취재한다고 해서 뭐 알 수가 있나. 기재부에서 결정한다 해도 다 뒤집혀서 틀린 얘기가 될 거고.”

누구 팔자, 누구 따라간다더니. 기재부 담당 기자 신세도 다를 게 없다. 하강 기류를 탄 기재부 위상을 따라가는 중이다. 지난 1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장수 경제부총리 기록을 세웠다. 윤증현 전 장관이 세운 이전 기록(842일)을 갈아치웠다. 홍 부총리가 재임한 840여 일은 유례 없는 기재부 위상 추락의 시간이기도 했다.

금융세제, 추가경정예산, 긴급재난지원금에 부동산 공급 대책까지. 그가 뱉은 말은 무수히 뒤집혔다.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 홍백기(홍남기+백기)란 별명만 남았다. 지난해 11월 홍 부총리는 사표를 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반려에 뜻을 꺾어야 했다. 사의 표명에까지 홍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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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재·보궐 선거가 마무리된 만큼 청와대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개각할 것이란 얘기가 돈다. 경제부총리가 바뀔지, 아니면 홍 부총리가 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지 미지수다. 결과가 어떻든 달라질 건 없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장관론 연구』란 책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실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까지 342명 장관을 분석했다. 김 교수가 던진 물음은 ‘장관을 바꾸니 부처에 변화가 있었느냐’다. 연구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인력과 예산·정책 모두 개각 전이나 후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1년 남짓밖에 안 되는 평균 재임 기간(13.32개월)에, 전 장관이 이미 다 짜놓은 예산·인력이 문제였다. 장관직을 정치적 도구나 전리품으로 여기는 청와대와 여권의 입김이 더 컸다. “장관의 역할에 임명권자(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유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한계를 뛰어넘은 장관은 소수였다.

김 교수는 20년 전 연구지만 상황이 바뀌긴커녕 더 나빠졌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이 지금의 상황을 축약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장관직을 정치적 도구로만 여기는 구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홍 부총리만 나올 뿐이다. 경제부총리란 막중한 자리를 허수아비로 만들어놓은, 한마디로 비극이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