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 25區, 부산 16區 野싹쓸이...민심은 이토록 무서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오세훈

오세훈

표심이 여당을 매섭게 메쳤다. 1년 전 야당이 겪었던 ‘잔인한 4월’이 이번엔 여권을 뒤흔들고 있다. 8일 0시45분 현재 66.5%의 개표가 진행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7.1%를 득표해 39.7%에 그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7.4%포인트 차로 앞섰다. 93.1%의 개표가 진행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63%를 득표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34.1%를 얻은 김영춘 민주당 후보를 28.9%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앞선 지상파 3사의 출구 조사에서도 서울과 부산 모두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30%대 지지율을 얻었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만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보선 8일 0시45분 현재 #서울 박영선 40% 오세훈 57% #부산 김영춘 34% 박형준 63% #보수, 5년 만에 전국선거 승리 #“여권의 이중성에 민심 폭발”

2018년 지방선거 대비 서울지역 구별 득표율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8년 지방선거 대비 서울지역 구별 득표율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관련기사

0시45분 현재 서울·부산시장 외에 기초단체장(울산 남구, 경남 의령)과 광역의원(서울 강북 등 8곳), 기초의원(서울 영등포 등 9곳)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다수 지역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앞섰다. 그러자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권력의 진자가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기대를 내비쳤다.

박형준

박형준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지난해 4·15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 49석 중 41석을 민주당이 쓸어간 지 꼭 358일 만에 서울의 권력이 야당 품으로 갔다. 보수 정당이 서울시장을 되찾아온 건 2011년 8월 당시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자진해서 사퇴한 뒤 10년 만이다. 동시에 1987년 체제 후 전례 없었던 보수 진영의 전국단위 선거 4연패(2016 총선·2017 대선·2018 지방선거·2020 총선) 사슬도 끊었다.

선거의 승패를 가른 키워드로는 분노를 꼽는 이들이 많다. 박명림(정치학) 연세대 대학원 지역협동과정 교수는 “집권 세력의 ‘이중 기준’에 민심이 폭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정책 결정의 정점에 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개혁 세력의 대표를 자임해 온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행태가 상징적”이라며 “한국엔 보수 강자와 진보 강자, 보수 기득세력과 진보 기득세력이 국민 위에 군림할 뿐 진보개혁 세력은 없다”고 했다.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잘못한 결과”

박 교수 외에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을 민주당의 조직력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반대급부로 된 것”(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정권 심판 욕구가 강했다.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같은 진단이 주를 이뤘다.

주목할 부분은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잘 못해서”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이 집권세력의 안티테제로서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건데, 국민의힘 자체 분석도 비슷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희 노력보다 민주당의 불공정, 내로남불에 분노한 20대와 중도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다”며 “이 정권의 민낯에 염증을 내는 분들의 지지가 (국민의힘으로) 옮겨왔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3월 대선까지 권력 진자의 우상향 기류가 이어질 거라 장담 못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심은 언제든 쉽게 바뀐다는 걸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대선 직전 선거의 결과가 대선 결과와 달랐던 전례도 있다. 김형준 교수는 “2002년 6월 지방선거와 8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연승했지만, 정작 그해 12월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앞세운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이 이겼다”며 “대선까지 남은 11개월은 길고, 여당 입장에선 대선 전에 미리 백신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권자의 재신임을 얻어 종국적으로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 여야의 전략·전술적 움직임이 치열하게 진행될 거란 전망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당장 여야 모두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있어 노선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과거보다 진폭이 커진 여론의 흐름도 정당의 고민을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업체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는 “민주당의 참패는 누적된 정책의 실패와 정치의 실패, 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도 “1년 남짓한 기간 만에 지지를 대거 철회한 데서 보듯 정당의 시대가 가고 스윙 보터(swing voter·이슈와 상황에 따라 투표하는 이들)의 시대가 왔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권호·허진 기자 gnom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