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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밥 머거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한국식 인사법으로 가장 많이 오가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밥 먹었어”다. 특히 가족끼리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밥은 먹었냐?”는 식으로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돌아오는 답은 “머거써” 아니면 “안 머거써”다.

그러고 무엇을 더 물어보니 이번에는 “어떠케 아라쩌”라고 한다. “아라써” 대신 “아라쩌”라고 하는 것을 보니 기분은 괜찮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떻게 대답에 받침이 하나도 없네.

이래도 괜찮나 싶어 이번에도 ‘머거써’처럼 먹는 것과 관련해선 탁월한 전문가이자 언어에도 영향력이 큰 백○○씨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뭔 걱정이 그러케 마너유. 그냥 내비 둬유. 다 알아들으면 됐지 뭘 그래유!” 그런다. 역시 그는 늘 여유가 넘친다.

그래도 나는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받침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은 ‘추카추카’에서 시작해 머거써, 아라써, 어떠케, 그러케(←그렇게), 마너(←많어)뿐 아니라 시러(←싫어), 조아(←좋아), 조타(←좋다), 마니(←많이), 아라요(←알아요), 부지러니(←부지런히), 가튼데(←같은데), 일거써(←읽었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 역시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생기는 일로, 소통엔 별 문제가 없다. 그만큼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까지 미리 알고 대비하셨는지 선견지명이 놀랍다. 다만 세종대왕도 백성이 한글의 우수성을 즐기는 것은 흐뭇하게 생각하겠지만 이러다 올바른 표기를 아주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조금은 걱정하시지 않을까 싶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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