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자신 구속한 한동훈 겨냥 "수사 과정 실시간 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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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개월여 만에 재개된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재판에서 “적폐청산은 광풍”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수사 과정에서 자신을 구속한 한동훈 검사장을 언급하며 “수사과정이 실시간 중계돼 모든 정보가 왜곡됐다”라고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7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 소속 판사 3명이 모두 바뀐 뒤 처음 열렸다.

양승태 2개월만 첫 발언 "적폐청산은 광풍"

한동훈 검사장(왼)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동훈 검사장(왼)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발언 기회를 얻은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에까지 붙어왔다”며 “그 과정에서 자칫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관찰을 방해하는 것은 사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얼마 전 검찰 고위 간부가 모종의 혐의로 수사받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며 ‘수사상황이 실시간 유출되고 수사의 결론을 미리 제시하는 수사팀 관계자와 법무부 관계자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검찰 고위 간부는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검사장은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지휘해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한 바 있다.

"수사과정 실시간 중계하며 왜곡"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사건이야말로 당시 수사과정에서 어떤 언론이 수사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쉬지 않고 수사상황이 보도됐다”며 “그 과정서 모든 정보가 왜곡되고 마구 재단돼 일반 사회에서는 마치 저희가 직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생각에 젖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광풍이 다 할퀴고 지나간 자국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왜 이렇게 된 것이냐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도 과거에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저희가 매우 걱정한다”며 “재판부가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끝맺었다.

‘이민걸ㆍ이규진 공모’도 전면 부인

지난달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1심 유죄를 선고받으며 양 전 대법원장도 재판에서 불리해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일부 혐의에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들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하도록 한 혐의 ▶서울남부지법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취소하도록 한 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을 와해시키려 한 혐의 등 3개다. 두 사건의 재판부가 다르지만, 다른 재판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뒤집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변호인은 이민걸 전 실장ㆍ이규진 전 양형위원과의 공모 관계도 전부 부인하고 나섰다. 변호인은 “헌재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지시가 위법이라는 게 검찰 생각인데, 기본적으로 이를 지시한 것은 이 전 위원”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은 헌법 관련 업무를 맡은 이 전 위원에게 잘해보라고 덕담한 것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9년 기소됐지만 혐의가 47개에 달해 아직 1심 선고가 나지 않고 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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