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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학자 “체면 앞세운 中외교, 清末과 비슷…또 위기 맞을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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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알래스카 미중회담 직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한 1901년 신축조약과 2021년 미중 고위층 회담 선전 포스터. [웨이신 캡처]

지난 3월 알래스카 미중회담 직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한 1901년 신축조약과 2021년 미중 고위층 회담 선전 포스터. [웨이신 캡처]

지난달 알래스카 미·중 회담에서 격렬한 언쟁이 벌어지자 중국 당국은 이를 청나라가 열강과 '신축(辛丑) 조약`을 맺을 당시와 대비했다. 중국이 120년 전처럼 열강에 당하던 존재가 아니라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됐다며 민족주의를 고조시킨 것이다.

국가존엄 앞세운 '체면지상' 외교 #청나라 말기 관리의 논리와 일치 #대만, 1차대전 발칸 반도와 비슷 #“군사 굴기, 모든 나라 대항 불러”

하지만 이런 '체면 중시' 외교가 과도한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고, 국가 존엄을 국가 이익보다 우선시하면서 청말(清末)의 비극을 다시 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 6일 마전쿤(馬振坤) 대만 국방대 중공 군사사무연구소 소장은 국제정치·경제 연구 싱크탱크인 원경기금회(Prospect Foundation)가 이날 타이베이에서 개최한 ‘미국 고위관리의 아시아·유럽 순방의 함의:대만의 관점’ 좌담회에서 이같이 지적했다고 대만 중앙통신사가 보도했다.

마전쿤(馬振坤) 대만 국방대 중공 군사사무연구소 소장이 6일 국제정치·경제 연구 싱크탱크인 원경기금회(Prospect Foundation)가 개최한 ‘미국 고위관리의 아시아·유럽 순방의 함의:대만의 관점’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RFA]

마전쿤(馬振坤) 대만 국방대 중공 군사사무연구소 소장이 6일 국제정치·경제 연구 싱크탱크인 원경기금회(Prospect Foundation)가 개최한 ‘미국 고위관리의 아시아·유럽 순방의 함의:대만의 관점’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RFA]

마 소장은 알래스카 회담에서 “양제츠(楊潔篪) 중공 중앙 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의 자세는 고압적”이라며 “그의 발언은 중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대만해역 주변에서 인민해방군의 해·공군 활동 태세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양제츠와 회담을 마친 뒤 바로 유럽을 순방했으며,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해군을 남중국해와 제1 도련(島鏈, 오키나와-대만-필리핀-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섬들의 사슬) 주변 수역으로 파견하고 있다”며 “중국 관영 매체와 인터넷 여론은 이를 ‘신 8국 연합군’으로 부르며 경보를 울리고 있다”고 최근 상황을 정리했다.

마 소장은 이어 “대청제국 말기 청나라 조정은 각국 열강과 많은 담판을 주선하면서 집권 당국의 체면(顏面)을 진정한 국가이익보다 앞세워 결국 비극을 불렀다”며 “양제츠는 중국의 국가 존엄을 강조하며 ‘중국인에게 이런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中國人不吃這一套)’고 말했다. 그 사유논리가 청말 조정 관리의 사유논리와 일치한다. 이는 중국을 국제정치에서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정치에서 현실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이익의 교환, 혹은 이익과 손해의 균형”이지만 “향후 국가 존엄과 진정한 국가 이익 사이에 모순이나 충돌이 발생할 경우 둘을 모두 고려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마 소장은 대만을 둘러싼 군사 충돌 가능성도 경고했다. “대만 주변에서 미국·중국·대만의 삼각 악순환이 계속 고조되면서 평화를 유지할 기회의 창이 갈수록 닫히고 있다. 대만 주변 해역이 마치 1차 세계 대전 폭발 직전의 발칸 반도와 같다”며 “비록 누구도 전쟁을 시작할 의도는 없지만, 전쟁의 화약통이 대만 주변에 넓게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리스후이(李世暉) 대만 정치대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대만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리스후이 교수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전략은 인권을 부각해 가치관 우열을 가지고 ‘가치관 선진국’이 ‘가치관 낙후국’에 맞서는 국면을 만들었고, ‘안보 의제’를 부각해 중국을 아시아의 위협 세력으로 지적하면서 동맹국과 합심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 교수는 이어 “과거 대만의 전략적 위상은 ‘제1 도련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불과했다”고 지적하고 “하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되고, 중국이 독재를 강화하면서 대만은 과학기술 발전과 민주·인권 성취 측면에서 주요 동반자 국가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즉, 지정학·민주인권·IT 발전이라는 세 가지 기둥이 대만의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런 상황이 대만을 미·중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며 “대만은 반드시 융통성 있고 탄력적인 전략적 대응 방침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전쿤 소장은 이날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제작한 ‘대국굴기(大國崛起)’ 다큐멘터리는 문명의 굴기를 강조하면서 서방의 패권식 굴기를 비판했다. 하지만 최근 중공이 대만 해역에서의 행동은 그들이 선전했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한 대국이 군사패권으로 굴기한다면 결국은 모든 국가 공동의 반항을 부르게 된다”고 경고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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