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9평 ‘땅콩집’서 부모 모시고 6식구 살았던 동생네

중앙일보

입력 2021.04.07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6)

얼마 전 동생이랑 대구서 만나 친정 부모가 살던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이층짜리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서로를 기대고 서서 ‘나도 집이다’라고 외치는 듯 했다. [사진 pixnio]

얼마 전 동생이랑 대구서 만나 친정 부모가 살던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이층짜리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서로를 기대고 서서 ‘나도 집이다’라고 외치는 듯 했다. [사진 pixnio]

자식 공부 많이 시킨 어느 지인의 이야기가 재밌다. 아들의 품격에 걸맞게 땅 팔아 아파트 한 채 사주고 신혼집 방문을 했더니 며느리가 데리고 온 고양이도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데, 집 사준 부모는 거실 마루에 엉거주춤 앉았다. 해가 져도 자고 가란 말이 없어 그냥 나왔다는 말에 모두 배꼽을 잡는다. 단칸방에서 시동생 시누이랑 함께 살아야 했던 ‘라떼~’어른들의 푸념 섞인 신혼 시절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자식을 결혼시켜 내보내야 인륜지대사의 한 가지 숙제를 풀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자식이 집에서 나가기만 해도 얼마를 주겠다며 흥정했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힘이 빠진다. 혼수 따윈 순위에 들지도 않는단다. 아들 딸 구별 없이 자식 신혼집 장만하는 데 보태야 하는 비용이 상상을 불허한다니 점점 더 낯설어지는 세상이다.

얼마 전 동생이랑 대구서 만나 친정 부모가 살던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이층짜리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서로를 기대고 서서 ‘나도 집이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중 ‘아닐 거야’라고 생각한 집이 옛 친정집이었다. 만평시장이라는 전통시장을 끼고 있는 동네라 발전도 더디어 그나마 좁은 틈새에 새로 지은 집들은 요즘 말하는 ‘땅콩집 ’형태다. 집과 집 간격이 50㎝도 안 되어 햇살이 쪼그려서도 못 들어오는 컴컴한 집이라는 것에 놀라고, 너무너무 작은 평수에도 집을 짓고 대가족이 살았다는 것에 더 놀랍다.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했다.

옛날엔 좁은 집에서 지지고 볶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 사랑이 끈끈했다. 나는 알뜰히 돈을 모아 부모께 손 안 벌리고 결혼한 것을 뿌듯해했지만 여동생은 더 큰 그림을 그렸다. 결혼 날을 받아놓고 짠순이같이 모은 돈으로 남의 집을 전전하며 전세를 사시던 부모님에게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지어 드렸다. 땅콩 같은 이층집을 지어 일 층은 세 주고 부모님은 집주인이 되어 이층에 사셨다. 주인 눈치 안 보고 대문을 덜커덩 열어 부모님을 부르며 들어가는 발걸음이란.

낮에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집이 일터가 되는 세상이다. 집의 모양과 생활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사진 pixabay]

낮에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집이 일터가 되는 세상이다. 집의 모양과 생활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사진 pixabay]

두 분은 작은 옥상에 꽃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몇 포기씩 심어놓고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시며 정원을 돌보셨다. 봄이 되면 10평도 안 되는 지붕 위 밭은 꽃 대궐이 따로 없었다. 그곳에서 맘 편히 사시다가 다 돌아가시고 남동생은 그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했다.

집이란 낮에 활동하는 사람이 밤에 들어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라 소박하고 편안한 곳이면 되고, 가족은 밤에 모여 대화를 하면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만 낮에 모여 있으면 싸움이 된다는 작은집 이야기를 쓴 어느 작가의 말이 2년 전만 해도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낮에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집이 일터가 되는 세상이다. 집의 모양과 생활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한사람에게 꼭 필요한 공간은 4평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나도 나이가 더 들면 10평 미만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 계획이다.

아홉 평 작은 집에서 여섯 식구 거느리고 저녁이면 아버지 방에 모여 수다를 떨고 아버지 좋아하는 화투판을 벌이던, 늘 웃음을 달고 살던 올케가 감사하다. 식구가 많아 아기가 기어 다닐 공간이 없어 사람과 사람의 손위로 날아다녔다는 전설의 조카도 졸업 후 취업했다니 세월은 참 빠르다. 올케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간다며 이사 소식을 전해준다. 열심히 일하며 잘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늘 대견하고 장하다. 옛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야기 끝에 하는 말이 살갑다.

“형님, 그땐 나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작은 공간도 천국이었거든요. 남편이 글쎄 길에서 길 잃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데려오더니 지금은 고양이를 더 사랑한답니다. 외로워서 집이라도 넓혀 보려고요. 호호”

아이들 내보내고 고양이도 떠나면 사랑도 다시 돌아올 거라며 허튼 격려를 해준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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