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조세저항 불러온 부동산 공시가, 재조정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정부의 불공정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전수조사한 공동주택 공시가격 검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정부의 불공정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전수조사한 공동주택 공시가격 검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이 그제(5일) 마감됐다. 정확한 수치는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해 3만7000여 건을 훌쩍 넘어 사상 최대였던 2007년(5만6000여 건)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강남의 고가 주택단지뿐 아니라 여당 소속 지자체장이 있는 세종시가 시 차원에서 공시가 하향 조정을 요청한 것만 봐도 올해 공시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팽배한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서초구 전수조사, 엉터리 산정 드러나 #졸속 검증 말고 다시 제대로 조사해야

특히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가 공동으로 발표한 공동주택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공시가격이 얼마나 주먹구구식 엉터리 산정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서초구 공시가는 평균 13.53% 올랐지만 지난해보다 100% 이상 오른 공동주택도 많았다. 제대로 된 산정 기준 없이 단순히 거래가 많으면 더 오르고 거래가 없으면 덜 오르는 식이어서 같은 단지의 층과 면적이 같은 두 아파트 공시가가 30% 이상 벌어진 경우도 나왔다. 심지어 실거래가보다 공시가가 2억원 이상 더 높은 곳도 있었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조차 없는 깜깜이 산정인 셈이다. 이러니 어느 국민이 이를 근거로 한 급격한 세금 인상이나 복지 자격 박탈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전국 곳곳에서 불만이 쌓이는데도 정부 대응은 안이하기만 하다. 일단 이의신청이 마감된 만큼 혹시라도 부당하게 산정된 지역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마땅하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정확한 산정 방식은 공개하지 않은 채 “적정하다”는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 가령 서초구는 실제 거래가 이뤄진 가격을 근거로 여러 문제를 제기했으나, 국토부는 “특정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는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놨다. 이래서는 이의신청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납득할 만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

투명하지 않은 산정 방식만큼이나 전문성 부족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자 국토부는 사상 처음으로 부동산원 이외에 외부 점검단의 검증 절차를 거치겠다고 예고했다. 경력 3년 이상의 감정평가사 30명이 이의신청 건에 대해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공시가를 확정 발표하는 오는 29일까지 이 적은 인력이 수만, 혹은 수십만 건의 이의신청을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만큼 검증작업 역시 졸속이 될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년간의 실거래가 데이터를 외부 점검단에 제공한다는데, 현장 실사도 없이 애초에 부실한 공시가를 산정하는 데 썼던 부정확한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봐야 오류를 바로잡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의신청 중 인정된 것은 2019년(21.5%)에 비해 현격히 적은 2.4%에 불과했다. 조세 불복 사태를 빚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공시가격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재조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