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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만 서면 쫄보됐다, 대문호 헤밍웨이의 반전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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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AP=연합뉴스

노년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AP=연합뉴스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노인과 바다』에서 『무기여 잘있거라』까지 주옥같은 문학 작품으로 기억되는 헤밍웨이의 상징은 불필요한 수식어를 배제한 문체다. 기자로도 일했던 헤밍웨이 본인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이렇게 썼다.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다. (중략) 수사적인 표현이나 과장된 문장들은 다 지워버리고, 내가 썼던 첫 번째의 간결하고 진솔하며 사실에 기반한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고 다시 썼다.”

이 밖에도 헤밍웨이에 대해선 몇 가지 상징이 존재한다. 럼에 민트 등 허브를 넣고 짓이긴 투박한 칵테일 모히토 애호가. 사냥을 즐기고 전쟁터를 누비고 쿠바를 사랑했던 미국인.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헤밍웨이의 면모가 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현지시간) “헤밍웨이라는 인간(person)과 페르소나(personaㆍ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의 간극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며 한 다큐멘터리를 집중 소개했다. 다큐 제목부터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헤밍웨이’다. PBS가 제작했다.

헤밍웨이의 20대 시절. 여권 사진이다. AP=연합뉴스

헤밍웨이의 20대 시절. 여권 사진이다. AP=연합뉴스

이 다큐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남성적 이미지와는 달리 방송 카메라 앞에만 서면 심하게 긴장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직후, 방송 인터뷰에 마지 못해 응했는데 전제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정해진 질문만 받고, 미리 정해놓은 답변지를 그대로 읽겠다는 것. 담대한 필체와는 사뭇 다른 면모다. NYT는 실제로 헤밍웨이가 방송국이 그에게 만들어준 큐카드엔 문장부호까지 적혀있었다고 전했다. 헤밍웨이의 깨알 요청 때문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 (쉼표)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봤다(마침표)” 이런 식이었다. 대문호도 방송 카메라 앞에선 긴장했던 것.

헤밍웨이의 또다른 전형적 특징은 남성성이다. NYT가 표현했듯 “남성성을 사랑하고 여성성은 혐오했다”는 이미지가 그에겐 있다. 그의 전 부인들 중 메리 웰시는 “헤밍웨이는 부인이 무조건 순종적이어야 하고 성적으로는 분방하길 바랬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이번 다큐에 따르면 헤밍웨이 본인은 실제로는 양성적(androgynous) 면모를 가졌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헤밍웨이의 대표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PBS 다큐는 그의 어린 시절을 조명하며 헤밍웨이의 어머니가 그를 어린 시절 여자아이처럼 입히는 걸 좋아했다고 전했다. 헤밍웨이 남매를 동성 쌍둥이처럼 입히는 걸 좋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헤밍웨이가 어린 시절 여아 옷을 입은 사진도 남아있다. 일부 문학 평론가들은 헤밍웨이가 이런 경험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반대로 마초(macho) 즉 남성적 스타일을 더 추구하게 되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다큐는 헤밍웨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양성적 면모를 즐겼다고 주장한다. NYT는 “성인이 된 후에도 헤밍웨이는 연인들과 성 역할을 바꾸는 놀이를 즐겼다고 다큐멘터리는 밝혔다”고 전했다.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와, 실제 헤밍웨이라는 인물의 간극이 있었다는 것이다. NYT는 “헤밍웨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형성을 탈피하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라며 “그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라고 평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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