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수목원 만들 땐 한국인 아니었다···남이섬 의형제 인연

중앙일보

입력 2021.04.06 05:00

업데이트 2021.04.06 05:49

수목원 평행이론② 천리포수목원 vs 남이섬  

수목원은 풀과 나무가 있는 정원이다. 인간이 부러 흉내 낸 자연이란 뜻이다. 하여 수목원에는 사람이 있다. 꽃과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전국의 이름난 수목원 중에는, 인연으로 이어진 수목원이 있다. 각별한 인연으로 연결된 전국의 수목원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마침 신록의 계절이다. 수목원 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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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의 원조 천리포수목원

수선화 만발한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국내 최초 민간 수목원이다. 손민호 기자

수선화 만발한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국내 최초 민간 수목원이다. 손민호 기자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 수목원의 역사와 같은 수목원이다. 공식적으로는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나, 나라에 변변한 수목원 시설이 없던 시절부터 수목원 역할을 해왔으니 실질적인 국내 최초 수목원이다. 현재 천리포수목원이 보유한 수종은 약 1만1000종으로 국립수목원보다 약 5000종 더 많다.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1921~2002) 박사가 평생을 가꾼 나무 낙원이다.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에 들어온 그는 1970년 천리포 해안 민둥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2002년 숨지기 전까지 수목원을 지켰다. 마침 오는 4월 8일이 19주기다.

천리포수목원은 목련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목련 500여 종 중에서 400여 종이 천리포수목원에 있다. 손민호 기자

천리포수목원은 목련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목련 500여 종 중에서 400여 종이 천리포수목원에 있다. 손민호 기자

천리포수목원은 특히 목련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목련 500여 종 중에서 400여 종이 수목원에 산다. 천리포수목원은 국제목련학회가 인정한 세계 최고 수목원이자, 국제수목학회가 아시아 최초로 인증한 ‘명문 수목원’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선 1년 내내 목련이 질 날이 없다고 한다. 목련 품종이 워낙 다양해서다. 그래도 목련의 계절은 봄이다.

나무섬 남이섬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봄날. 남이섬의 주인공은 나무다. 사진 남이섬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봄날. 남이섬의 주인공은 나무다. 사진 남이섬

강원도 춘천 남이섬은 한류 관광 1번지다. 엄격히 말하면 남이섬은 수목원은 아니다. 정식 수목원은 아니나, 누구나 인정하는 나무 천국이다. 남이섬은 220여 종 1만여 그루 나무로 울창한 공원이다. 남이섬은 자체 관광조경연구소를 운영했고, 조경원 인원만 현재 60명이 넘는다.

애초의 남이섬은 섬도 아니었다. 북한강이 차오르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뭍이 되는 모래밭이었다.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섬이 되었다. 이 섬을 1965년 수재 민병도(1916∼2006) 회장이 샀고, 수재는 돌아가기 전까지 나무를 심었다.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봄날. 남이섬에는 1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다. 사진 남이섬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봄날. 남이섬에는 1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 나무는 사람이 일부러 심은 나무다. 수목원 대부분이 인공 자연이라지만, 남이섬은 유별나다. 애초의 섬이 모래밭이어서 나무를 심으면 금세 죽었기 때문이다. 남이섬은 흙을 깔고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자라 외국인을 불러모으는 관광 자원이 되었다. 메타세쿼이아 길과 은행나무 길에는 여전히 인증사진 찍는 줄이 서 있다.

의형제

남이섬의 봄 풍경. 남이섬은 자전거 타고 산책하기에 좋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의 봄 풍경. 남이섬은 자전거 타고 산책하기에 좋다. 사진 남이섬

천리포수목원과 남이섬은 나무를 사랑한 두 사람이 일군 낙원이다. 천리포수목원의 민병갈 박사와 남이섬의 민병도 회장. 그러고 보니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 우연일까? 아니다.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둘의 인연은 1947년 시작됐다. 민 박사가 미 군정청 재정담당관 시절 당시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민 회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이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민 회장이 민 박사보다 형이었지만, 먼저 나무를 심은 사람은 동생이었다. 동생이 형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뜰 때까지 둘은 서로 의지하며 나무를 심었다. 민 회장은 1979년부터 1997년까지 동생의 천리포수목원 이사로 참여했고, 민 박사는 천리포수목원에서 키우던 묘목을 형의 남이섬에 여러 차례 전해 주었다.

민병갈 박사의 원래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다. 1979년 귀화하면서 형 민병도 회장의 이름을 본 따 개명했다. 형의 성(姓) ‘민(閔)’을 따라 민씨가 됐다. 본관 ‘여흥’도 따라 돌림자로 쓰이는 이름 ‘병(丙)’ 자도 빌렸다. 민 박사는 여흥 민씨 명예 회원 자격으로 문중 원로를 수목원으로 초청해 종친회를 베풀기도 했다.

천리포수목원 창립자 민병갈 박사 흉상. 손민호 기자

천리포수목원 창립자 민병갈 박사 흉상. 손민호 기자

2012년 민병갈 박사 10주기를 맞아 천리포수목원과 남이섬은 형제 확인서를 교환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민병도 회장을 기리는 수재원이 있고, 남이섬에는 천리포수목원을 대표하는 목련원이 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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