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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 갑자기 생긴 분화구…온난화 ‘시한폭탄’ 드러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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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지난달 23일 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좌초하면서 막혔던 수에즈 운하가 3일에야 정상을 회복했다. 물류 대란을 겪은 전 세계 해운회사들은 이 같은 상황이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북극항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수에즈운하 사고에 북극항로 주목 #쇄빙선 LNG 운송 선물이기만 할까 #동토층 메탄 방출로 기후재앙 우려 #탄소중립 달성해야 예방할 수 있어

북극해를 지나는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거리 항로다.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것보다 운항시간을 10여일 줄일 수 있다. 최근까지 여름철 짧은 기간에만 운항이 가능했지만, 지구온난화로 북극해 얼음이 줄고 쇄빙선 성능도 향상되면서 겨울에도 운항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한겨울인 지난 1월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쇄빙LNG선이 시베리아 북서부 북극해의 야말 반도 사베타 항을 출발해 중국까지 항해했다. 쇄빙LNG선은 한국 조선업체가 세계 최초로 건조했다.

그렇다면 북극항로 항해와 시베리아 천연가스는 지구온난화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선물일까.

지난해 7월 북극해 러시아 야말 반도에서 발견된 지름 25m의 분화구. 영구동토층이 녹고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땅속에 메탄이 쌓여 폭발하면서 생긴 것이다. [사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지난해 7월 북극해 러시아 야말 반도에서 발견된 지름 25m의 분화구. 영구동토층이 녹고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땅속에 메탄이 쌓여 폭발하면서 생긴 것이다. [사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지난해 7월 16일 야말 반도 상공을 비행하던 러시아의 한 헬기 조종사는 땅 위에 생긴 지름 25m, 깊이 30m의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분화구를 덮고 있던 흙덩어리는 주변 200m까지 날아갔다. 조사를 맡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석유·가스연구소 연구팀은 지난 2월 ‘지구과학(Geo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분화구는 땅속에 고였던 메탄가스가 지난해 5~6월 폭발하면서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야말 반도 인근에서는 2014년 이런 분화구가 처음 발견됐고, 이번 것까지 17개가 발견됐다. 가스 압력으로 땅이 솟아오른 작은 언덕도 수천 개나 된다.

호수에서도 메탄이 새 나오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은 지난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위 50도 이상의 고위도 지방에 자리 잡은 호수에서 배출되는 메탄의 총배출량은 연간 1380만~1770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3억7500만 톤, 세계 7위인 한국 배출량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 최초로 건조한 쇄빙LNG선이 얼음을 깨면서 운항하고 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세계 최초로 건조한 쇄빙LNG선이 얼음을 깨면서 운항하고 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시베리아에는 드넓은 영구동토층이 분포한다. 여기에는 1조 톤에 이르는 유기탄소가 저장돼 있다. 전 세계 토양 유기탄소의 절반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높았던 중생대 백악기에는 북극지방에도 숲이 있었고, 이 숲이 빙하기를 거치면서 땅속에 갇혔다. 최근 북극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영구동토층과 퇴적물이 녹고, 땅속 유기물을 미생물이 분해해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만든다. 특히 혐기성(무산소) 상태에서는 유기탄소의 4분의 1이 메탄으로 전환된다. 계산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100배의 온실효과를 갖고 있어 메탄 방출은 지구   온난화를 더욱 가속한다. LNG의 주성분이 바로 이 메탄이다.

지난달 24~25일 독일 함부르크대학 토양과학연구소는 ‘시베리아 영구동토층과 기후변화’를 주제로  온라인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에서 러시아과학원 세르게이 지모프 연구원은 “2002~2019년 위성 데이터를 분석해 7~9월의 메탄농도 지도를 만들었다”며 “9월에는 영구동토층 분포지역 절반에서 메탄 농도가 지구 평균 농도보다 5~15 ppb 높았다”고 강조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메탄이 새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지모프 연구원은 특히 “지구온난화가 지금 같은 추세로 계속된다면 영구동토층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인위적인 배출량보다 우세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 소속 스티그빌켄스켈트 연구원 등은 “마지막 빙하기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영구동토층 등 300만㎢의 땅이 북극해에 잠겼는데, 가스 분출을 막는 ‘뚜껑’인 해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엄청난 메탄이 방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해빙 연구가인 피터 와담스 교수는 그의 책 『빙하여 잘 있거라』에서 “2040년까지 북극 메탄으로 인해 지구 기온이 0.6도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는 “21세기 인류가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22세기에는 북극 해저 영구동토층이 녹는 속도가 15배로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는 쇄빙LNG선이 아니더라도 이미 파이프라인으로 운반하는 영구동토층 천연가스에 중독됐다. 메탄을 그냥 방출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천연가스를 태우면 온실가스가 나온다. 지구 기온이 오르고, 영구동토층이 녹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북극 메탄은 선물인 동시에 기후재앙을 부르는 ‘시한폭탄’도 되는 셈이다. 이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게 하려면, 결국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배출되는 것은 산림으로 흡수하거나 포집·저장해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0)화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대 법학대학원 산하 정책연구소는 전 세계 738명의 경제학자를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참여한 경제학자의 74%는 ‘즉각적이고 과감한 행동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경제학자들까지도 온실가스 감축을 앞세울 정도로 기후 위기는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