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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화운동 유공자는 모든 국민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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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환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김영환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민주화운동 과정에는 수많은 국민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 저와 제 아내는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으로 유공자로 우대받을 자격이 없다.”

“위선에 분노” 김영환 예우 반납 #민주화는 특정 세력의 공 아냐

어제 아침 전해진 김영환 전 의원의 고백은 많은 이를 숙연케 했다. 그는 지난달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주화유공자 가족을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자 강하게 비판하며 유공자 지위 반납을 예고했다. 얼마 뒤 설 의원이 법안을 철회했지만 “특혜를 누리려고 민주화운동에 나선 것이냐”는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도덕성과 공정을 내세운 현 정권 인사들의 불공정한 행태에 질린 이들 사이에 “이 정권은 위선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어제 페이스북에 “지금 광주민주화운동 증서와 명패를 반납하러 간다”며 자신과 아내의 유공자증서 사진을 올린 뒤 이날 반납 절차를 마쳤다. 유신 반대로 연세대 재학 중 옥고를 치른 김 전 의원은 이후 아내와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됐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부부가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예우나 지원이 국민의 짐이 되고 있다. 우리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할 때는 결코 이런 보상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며 “4·19혁명에 참여한 국민, 광주민주화운동 때 고통을 당한 시민, 6월 항쟁에 동참한 온 국민이 유공자”라고 밝혔다. 이어 “작금의 민주화 퇴행, 부패 만연, 특권과 반칙의 부활을 지켜보면서 과거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위선과 변신에 깊은 분노와 연민의 마음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설훈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3명은 지난달 민주화유공자 가족 등에게 교육·취업·의료·주택 지원을 하는 내용의 ‘민주유공자예우법’을 발의했다 여론의 뭇매를 받고 철회했다. 이 과정에 제대로 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이미 이 정부에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이익과 혜택을 누리고 있는, 586세대로 상징되는 민주화유공자들이 가족마저 예우받게 하려는 데에 많은 이가 분노했다. 김 전 의원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공’이 일부 인사나 특정 세력이 아닌,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화로 가는 주요 고비마다 민주화 세력을 돕고 이들에게 힘을 실은 건 평범한 국민이었다. 1987년 6·10항쟁 때 시위대에 물과 빵과 박수를 보냈던 넥타이 부대, 2016년 촛불시위 때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었던 유모차 부대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민주화유공자를 자처하며 각종 특혜와 예우를 요구하지 않는다.

왜 늘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아닌, 김 전 의원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의 몫이어야 하나. 지금이라도 비뚤어진 선민의식을 버리고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면 민주화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