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평야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곳엔 특별한 부부가 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05 16:28

업데이트 2021.04.05 21:54

전북 김제의 미즈노 마사유키의 트리하우스. 미즈노씨 가족. 임현동 기자

전북 김제의 미즈노 마사유키의 트리하우스. 미즈노씨 가족. 임현동 기자

전북 김제의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왼쪽이 남편 미즈노 씨, 오른쪽이 부인 최은희 씨다. 임현동 기자

전북 김제의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왼쪽이 남편 미즈노 씨, 오른쪽이 부인 최은희 씨다. 임현동 기자

봄이 한창인 전라북도 김제 평야 안쪽 깊은 곳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있다. 영국 소설이 원작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그 애니메이션, 맞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에서 나고 자란 미즈노 마사유키(53·水野雅行) 씨와 김제 출신 부인 최은희(51) 씨가 사는 곳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훌쩍 키가 큰 나무가 나타나는데 그 위에 이런 나무로 만든 집이 있다. 나무 위의 나무집. 애호가들 사이에선 ‘트리하우스’라고 불리는 건축 양식이다. 그래서 이름도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다.

보기엔 앙상하지만 실제론 탄탄한 가지들로 엮고 붙인 이 나무 위의 집은 애니메이션의 그 움직이는 집을 닮았다. 지난달 말 이곳을 찾았을 때 최 씨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잘 오셨어요”라며 환한 미소로 맞이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포근한 미소의 그는 “남편이 워낙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진짜 (애니메이션의 남자 주인공) 하울 같다”며 “나는 영락없이 남편 뒤치닥꺼리 하는 (여자 주인공) 소피”라며 웃었다. 미즈노 씨도 설거지를 하며 한 마디 붙인다. “하울과 소피가 만나서 사는 게 쉽지는 않지”라며 웃는다. 그러자 최씨가 덧붙인다. “힘은 들어도, 영혼이 죽은 남자와 살기는 싫죠.”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낳고 키운 부부는 여전히 알콩달콩하다.

미즈노씨의 트리하우스의 카페 내부. 가운데 환한 미소를 짓는 어여쁜 아가씨가 따님이다. 임현동 기자

미즈노씨의 트리하우스의 카페 내부. 가운데 환한 미소를 짓는 어여쁜 아가씨가 따님이다. 임현동 기자

이 둘은 어떻게 만났을까. 낭만적 답을 기대했지만 의외였다. 최 씨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남편 얼굴을 본 게 결혼식 이틀 전이었다”고 운을 뗐다. 결혼식을 올린 1992년 당시 두 사람 모두 통일교 신자였고, 교회에서 진행한 합동결혼식에서 서로를 만난 것. 미즈노 씨는 “한국어도 전혀 못했지만, 당시 세계 평화가 꿈이었고, 한국과 일본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강연도 한국어로 할 정도로 청산유수다.

몇 년 가지 않아 그러나 몇 년 후, 미즈노 씨는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종교는 내게 하나의 학교와 같았다”며 “종교 생활 참 열심히 했지만 어느 순간 이젠 졸업을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부인에게 얘기하자 선뜻 동의해줬다. 그는 “인생의 핵심적 고비 때마다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봐준 사람”이라며 “와이프가 참 고맙다”고 말했다. 최 씨는 곁에서 “결국 모든 종교의 뿌리는 같지 않은가 싶다”며 “나와 내 가정부터 평화롭고 행복하게 꾸린다면 그게 곧 세계 평화 아닐까”라고 말했다.

미즈노씨의 인생 고비마다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가 부인 최씨였다. 임현동 기자

미즈노씨의 인생 고비마다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가 부인 최씨였다. 임현동 기자

문제는 그 뒤였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종교라는 커뮤니티에서 해결하던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다. 한국에서 살다가 다시 고향 삿포로로 돌아갔고, 곡절 끝에 자격증을 취득했고 취직도 했다. 35년 만기 대출로 아파트도 장만했고 야근이 일상이 됐다. 그러다 번아웃이 왔고 면역력이 떨어져 결핵에 걸려 회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는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돈 없이 사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았다”며 “인생이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떨어질 곳이 있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모님 건강도 안 좋아졌고 부인도 우울증 증세가 나타났다. 결국 2002년 다시 한국 행. 막막한 건 매한가지였다. 미즈노 씨는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재개발 아파트에서 나도 모르게 베란다로 향해서 뛰어내리려고 했다”며 “그때 나를 뒤에서 와이프가 힘껏 껴안았고, 나도 정신을 차렸다”고 말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나답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어렸을 때부터 내가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걸로는 돈을 못 버니까 남들 눈에 근사하게 보이는 인생을 억지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집이고 트리하우스였다. 최 씨에게 이런 결심을 말하면서 미즈노 씨는 당연히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씨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내가 당신의 첫번째 팬이 되어줄게요.” 최 씨의 이 말에 미즈노 씨는 힘을 얻었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미즈노씨. 1968년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동안이다. 임현동 기자

커피를 내리고 있는 미즈노씨. 1968년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동안이다. 임현동 기자

궁즉통이다. 서울살이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뒤 부인의 김제 본가가 비어있었다. 정리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김제로 향했다. 망한 스크린골프장에서 천막을 얻어오고, 폐자재를 가져오면서 이것저것 구색을 갖춰 나갔다. 김제라는 지역도 그에게 잘 맞았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서 살면서 나는 ‘아, 나는 원래 백제인인데 일본에서 태어났구나’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물론 돈도 벌어야 했다. “한국과 일본의 가교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일본의 열대어를 한국에 들여오는 사업부터 강연까지 뛰어들게 됐다.

시련은 끝이 없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셋째 딸이 아팠다.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이었다. 딸의 건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을 하다, 미즈노 씨는 정성을 다해 트리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완공될 즈음 딸은 건강히 퇴원했다. 트리하우스는 미즈노 씨네 복덩이가 됐다. 이 트리하우스를 보고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게 되면서다.

손님에게 차를 내던 것이 발전해 아예 카페를 차리게 됐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의 유명한 핫플레이스다. 최 씨는 “많은 분들이 어두운 얼굴로 찾아오셨다가 밝은 표정으로 나가시는 걸 보면 뿌듯하다”며 “누구라도 트리하우스에 올라가면 동심을 품은 아이의 표정이 된다”며 웃었다.

입소문이 나서 이젠 먹거리도 파는 번듯한 카페가 된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임현동 기자

입소문이 나서 이젠 먹거리도 파는 번듯한 카페가 된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임현동 기자

집 곳곳엔 여전히 폐자재와 공구들이 즐비하다. 그 옆엔 미즈노 씨 가족의 모토가 적혀있다. “오늘도 우리 집 공사 중, 인생도 행복도 공사 중.”

미즈노 씨는 “진정한 꿈이라는 것은 뿌리와 같아서 가지를 아무리 잘라내도 계속 나온다”며 “나 자신을 잘 알고 스스로를 믿는다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꽃을 피워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전수진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