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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백신 괴담을 떠들어대는 사람이 고마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8)

엄마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은 모양이다.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이니 혈전이니 하는 소식이 매일같이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주위에선 무섭다며 백신을 맞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단다. 그러니 엄마의 망설임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병원에 있는 의사 선생님조차 권하지 않는 분위기인가 보다. 혈전 문제처럼 과학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부작용 위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게 팩트라고, 그러니 접종 여부는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단다.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어. 무조건 맞겠다고 해.”

나는 아주 단호하고 자신 있게, 단칼에 잘랐다. 그 의사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실력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모는 아들인 내 말을 더 신뢰할 것이다. 그야 당연히 우리 부모님 눈에는 내가 최고의 의사일 테니까. 아마 더는 고민 없이 백신을 맞을 게 틀림없다. 그거면 됐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죽은 환자 수는 어느새 2000명을 향하고 있고, 전 세계로 따지면 300만 명이 눈앞이지만 백신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 수는 많이 쳐줘 봐야 3살 아이가 셀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중앙포토]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죽은 환자 수는 어느새 2000명을 향하고 있고, 전 세계로 따지면 300만 명이 눈앞이지만 백신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 수는 많이 쳐줘 봐야 3살 아이가 셀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중앙포토]

“할머니뿐 아니라, 엄마랑 아빠도 기회가 생긴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맞아. 제일 먼저 팔을 내밀란 말이야. 누군가 맞기 싫다고 한다? 얼른 손들고 자원해서 냉큼 맞아버려.”

많은 사람이 백신을 불신하고 있다. 차라리 잘됐다. 다들 맞기 싫어하면, 사랑하는 내 가족이 접종받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테니. 백신 수급이 쉽지 않은 분위기라 어차피 이른 시일 내에 전 국민 접종은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한정된 수량뿐일 거라, 내 가족 순번은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다. 그러니 무서운 얘기를 쉬지 않고 떠들어주는 사람을 보면, 이제는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수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포기하도록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덕분에 나를 믿고 내 말을 따라주는 내 사람은, 선택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이다. 그거면 됐다.

세상에는 백날 얘기해도 소용없는 게 있다.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할 확률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도 비행기가 수백 배는 더 안전하다. 하지만 우리는 비행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대번에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반대로 허구한 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죽음을 걱정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자동차 사고는 워낙 흔하고 경미한 경우가 많아서일까? 그래서 무뎌진 걸까?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을 텐데, 너무 흔한 일이라 이런 게 뉴스가 되는 일은 드물다. 대신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어김없이 뉴스 1면을 장식한다. 거의 ‘반드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더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오늘도 뉴스를 장식하는 예방접종 부작용 소식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자동차 사고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수동적으로 앉아있는 비행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교통사고 사망에서 운전자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 조심하면 충분히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백신이 주입되어 발생하는 사고는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당할 거라고 걱정한다. 1년이 넘도록 죽자고 조심해도 여전히 하루에 수백 명 넘는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고, 환자가 매일같이 죽어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백신으로 인한 거의 모든 부작용은 의료진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죽은 환자 수는 어느새 2000명을 향하고 있고, 전 세계로 따지면 300만 명이 눈앞이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 수는 많이 쳐줘 봐야 3살 아이가 셀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300만 목숨을 앗아간 악명 자자한 코로나도, 백신만 미리 맞아두면 설령 감염되어도 가볍게 앓고 끝나지, 죽음에 이르는 일은 어지간해선 없다. 하지만 사람들 귀에는 들어오지 않을 테지. 여전히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비행기가 무서울 테니까 말이다.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할 확률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도 비행기가 수백 배는 더 안전하다. [사진 pixabay]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할 확률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도 비행기가 수백 배는 더 안전하다. [사진 pixabay]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한다. 코로나로 죽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하다. 더 안타까운 건 감염 우려로 최선의 처치를 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라는 사실이다. 팬더믹에는, 심장이 멎어도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백신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은 10년 넘게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아직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였다. 내게 코로나는 항시 상존하는 죽음의 위협이지만, 백신 부작용에 따른 사망은 벼락 맞고 죽는 환자보다 더 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렇지만 일반인 눈에는 이게 정반대로 느껴지나 보다.

나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그러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최종결정은 어디까지나 본인들 몫일 터. 나는 그저 모두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만 바랄 뿐이다. 의사에게 모든 환자는 가족과 같으니까.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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