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가장 앗아간 을왕리참극…갈라진 남녀, 판결도 갈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05 05:00

업데이트 2021.04.05 10:01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 A씨(가운데)가 1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중구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 A씨(가운데)가 1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중구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8일 A씨(35·여)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인천시 중구의 한 식당으로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바삐 움직였지만, 식당에 도착한 건 영업종료를 앞둔 오후 8시 44분. 식당엔 A씨 친구와 B씨(48) 등 3명이 있었다. 오후 5시쯤부터 술잔을 기울인 이들은 취기가 올라 있었다. 오후 9시 가게 문을 닫자 A씨 등은 B씨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을왕리해수욕장 근처 호텔로 향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 A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자신이 몰고 온 차량은 식당 근처에 세워둔 채였다.

호텔 내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말싸움이 시작됐고 화가 난 A씨는 “집에 가겠다”며 호텔을 나섰다. 집에 가기 위해선 자신의 차량을 세워둔 식당 근처로 가야 했다. 그러나 수차례 호출에도 대리운전기사가 배정되지 않았다. 뒤따라 호텔을 나선 B씨는 “일단 (내) 차로 가자”며 A씨를 설득했다. 이때 B씨가 자신의 승용차 잠금을 해제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탄 이들은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A씨는 제한 속도를 넘어 역주행했고, 맞은 편에서 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박았다. 늦은 시간 치킨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에 오른 50대 가장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승자를 공범으로 본 검찰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 A씨(가운데)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중구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심석용 기자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 A씨(가운데)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중구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심석용 기자

검찰은 A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및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동승자 B씨엔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 및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교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A씨와 B씨를 공동정범으로 보고 모두 윤창호법을 적용한 것이다. 음주운전 차량 동승자에 윤창호법을 적용해 기소한 첫 사례였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내면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 특가법과 운전면허 정지·취소 기준 등을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법정서 갈라진 운전자와 동승자

지난해 9월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차량으로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와 동승자의 첫 재판 당시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서 동승자가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차량으로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와 동승자의 첫 재판 당시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서 동승자가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재판에서 A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지만 B씨는 “음주운전 방조는 인정하지만, 교사는 아니다”라며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B씨가 술에 만취해 대부분의 상황을 기억 못 하고 있는데 A씨 등의 진술로 공동정범이 되고 음주 교사 혐의가 적용됐다는 게 B씨의 주장이었다. 앞서 A씨는 “B씨가 대리가 잘 안 잡히니 편의점 쪽으로 가자고 했고 도착 후에도 앞으로 더 가라는 식으로 손짓했다”고 진술했다. A씨와 B씨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B씨가 A씨의 음주운전에 얼마만큼 관여했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됐다.

法, A씨 진술에 의문 던졌다

법원은 A씨가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과 달리 B씨가 자신에게 운전하게 시켰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내용도 구체화한 점에 주목했다. A씨는 호텔 주차장을 나서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상황은 상세히 진술하면서도 사고 전 2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충돌 직전까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등 자신이 역주행한 사실을 몰랐을 만큼 취한 상태였다. 재판부는 “A씨가 같은 시간 또는 매우 근접한 시간에 일어난 일을 선택적으로 기억해 진술하고 있다.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의 말을 듣고 음주운전을 결의했다는 A씨의 진술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이들이 사건 당시 처음 만난 점, A씨가 호텔에서 B씨 때문에 불쾌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볼 때 A씨가 B씨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관계 또는 신뢰를 맺은 관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고 당일 A씨는 B씨에 앞서 주차장으로 걸어갔고 차량 운전석 앞에 선 뒤 차량 문이 열리지 않자 B씨를 바라봤다. B씨가 잠금을 해제하자 탑승해 2분 만에 운전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A씨가 화가 난 상태에서 현장을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에 차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며 “탑승할 무렵 이미 음주운전을 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인천지법 형사3단독 김지희 판사는 운전자 A씨에게 징역 5년을, 동승자 B씨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B씨를 위험운전치사의 공동정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고 음주운전 방조 혐의만 적용했다. 음주운전 차량에 함께 타긴 했지만, 운전자가 낸 사망 사고의 책임까지 동승자에게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는 자신의 의사로 음주운전을 했다”며 “B씨가 이 사건 차량의 실질적 소유자라거나 이 사건에 관여한 정도만으로는 A씨의 음주운전을 제지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할지를 검토할 방침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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