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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인해 시작한 촛불혁명 완수" 명함도 없이 시장 출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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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 선거 벽보에 즐비한 12명의 후보를 보셨죠. 거대 양당을 빼면 낯선 후보, 작은 목소리들입니다. 중앙일보 2030 기자들이 3040 후보들을 만나봤습니다. 서울시민에게 전하는 그들의 신념과 열정의 출사표를 소개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촛불혁명을 완성하고자 출마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작가라고 소개한 기호 14번 무소속 이도엽(37) 후보의 출사표는 단호했다. 선거 공보물의 경력에 ‘카투사 병장 제대’와 ‘고조선 역사소설 출판’만 적은 그는 ‘촛불혁명완수’라는 공약으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다. 정치 경력의 첫 시작이라고 했다.

[서울시장 3040후보] #기호⑭ 이도엽 무소속 후보

명함도유세도 없는 ‘최소 비용 정책 선거’

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도엽 무소속 후보는 '최소 비용 정책 선거'를 하고 있다며 자신이 유권자와 소통하고 있다는 SNS(소셜미디어) 계정을 보여주었다. 이가람 기자

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도엽 무소속 후보는 '최소 비용 정책 선거'를 하고 있다며 자신이 유권자와 소통하고 있다는 SNS(소셜미디어) 계정을 보여주었다. 이가람 기자

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한 타로(tarot·그림이 그려진 카드로 점을 치는 것) 카페에서 이 후보를 만났다. 지금까지의 3040 서울시장 후보들과의 첫 만남이 선거 운동이 한창인 유세 현장에서 이뤄진 것과 대비됐다. 예상을 깬 약속 장소만큼 이 후보는 통상의 후보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하얀색 비닐장갑을 낀 채 카페 테이블에 앉은 그는 장소에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집과 가장 가까워 이 장소를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최소 비용 정책 선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 석 자와 공약이 적힌 명함조차 없었다. 이 후보는 “시민에게 명함을 돌리고 유세차를 타고 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건 구시대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의 선거 운동은 오로지 온라인에서만 이뤄지고 있었다.

이 후보는 “요즘 시대에 발맞춰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에 내 생각을 담은 글과 정책 공약을 올리며 유권자와 소통하고 있다”며 기자에게 자신의 SNS 계정을 보여줬다. 팔로워 362명인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서울시 기후조례 개정’ ‘시민투자조합 설립’과 같은 정책 설명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그의 대표 공약은 ‘기후위기해결’과 ‘지역균형발전’이다.

“나로 인해 시작된 촛불혁명”, 완수 위해 출마  

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기호14번 이도엽 무소속 후보. 그는 '촛불혁명완수'를 위해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이가람 기자

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기호14번 이도엽 무소속 후보. 그는 '촛불혁명완수'를 위해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이가람 기자

1순위 핵심 공약은 ‘촛불혁명완수’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난 2017년 촛불혁명은 나로 인해서 시작됐다”며 “여전히 촛불혁명의 목표였던 정치경제민주화가 완성되지 않아 이를 완수하고자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촛불혁명이 일어났는데 국민의힘 정당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며 “적폐를 청산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촛불시장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촛불혁명이 이 후보로 인해 시작됐다는 주장의 근거가 궁금했다. 이 후보는 2011년부터 인터넷에 자신이 쓴 글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촛불혁명 당시 시민이 바라던 목표, 그리고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들을 보면 내가 인터넷에 올려왔던 글과 모두 연결이 된다”며 “사람들이 내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 촛불혁명이 일어난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 전역 돌아다니며 추천 서명 2000명 채워

한때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었던 이 후보는 민주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 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 후보는 “왜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지 설명을 요구해도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며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좌파’라고 설명한 이 후보는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 다시 민주당에 복당하겠다고 밝혔다.

무소속 출마 과정은 쉽지 않았다. 5000만원의 후보 등록 기탁금을 내야 하고 서울시민 2000명의 추천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어머니 이모(61)씨와 함께 지난 3월 13일부터 5일간 서울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추천인 서명을 받았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온종일 땀띠가 날 정도로 걸어 다녔다”며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서명을 해주시는 시민들을 보면서 촛불혁명이 나로 인해서 일어났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탁금과 선거 공보물 제작 비용 약 1억여원은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고 한다.

1% 안 되는 여론조사 지지에 당황한 표정도

이 후보는 지금까지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은 집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자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당선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가 최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그가 0.1%의 지지를 받은 결과를 보여주니 “자신의 지지율이 집계된 여론조사 결과는 처음 본다”며 당황해 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기사를 본 그는 “저 때문에 촛불혁명이 일어난 게 아닌가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자기 목소리 내야 세상이 바뀐다”

이 후보는 “조사기관마다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니 끝까지 선거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 낙선할 경우엔 정치를 계속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 후보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꼭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고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많다”며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렇게 해야 세상이 바뀌니 많은 사람이 출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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