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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민주당의 괄목할 만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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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성명 발표를 마치고 고개숙이고 있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왼쪽)과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 [뉴스1]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성명 발표를 마치고 고개숙이고 있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왼쪽)과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하도 ‘샤이 진보’(숨은 표) 얘기를 많이 해서 영국 선거를 떠올린다. 한국에 덜 알려진 관례가 있는데 개표 의식이 그중 하나다. 해당 선거구의 책임자가 후보별 최종 득표수를 발표할 때 출마자들도 모두 함께 자리한다는 점이다. 지지자들의 환호와 낙담 속에 당선자도, 낙선자도 서로 악수를 한다. 제아무리 정치적 거물도 예외는 없다. 일종의 승복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여당, 4·7 재·보선 열세 판단에 #연신 잘못 사과하며 숨은표 기대 #진정한 변화여야 민심 달라질 것 #

4·7 재·보선을 앞두고 양 진영이 치르는 전쟁 같은 선거를 보면서 과연 상대편의 승리에 승복할 수 있을까 해서 떠올린 기억이다. 그렇더라도 새삼 선거 자체가 갖는 힘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괄목할 만한 변신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과할 줄 아는 정당이 됐다. 180여 석의 완력을 휘두르며 법안 통과를 지휘했던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고개를 숙였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다.” 조건문이 아니었다. 재정 씀씀이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실천력도 남달랐다. 1시간 만에 번복하긴 했지만 임대차 3법도 수정하겠다고 했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의 천안함 사건 재조사 각하 결정도 신속했다. ‘임차인이자 임대인’이었던 박주민 민주당은 의원은 월세 내려받기까지 실현했다.

놀랍게도 오랜 우군이었던 2030세대의 역사적 경험치에 의문을 품었다. 일부 지지자라곤 하나 “문재인 찍은 거 후회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마음을 갖고 오세훈 유세 차량에 오르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혼냈다. 국민의힘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선물’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줄지어 유세 차량에 오른 것이다.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인근에서의 ‘청년오픈마이크-청년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유세가 대표적이다. 오 후보가 탄다는 5t 유세차에서 23세라는 청년은 이렇게 외쳤다. “야당이 잘못하면 촛불을 들겠다. 지금은 (민주당) 당신들의 최악이다. 우리의 분노를 투표로 보여주겠다.” 경희대 출신이란 20세 청년은 여권의 동문 정치인들을 거명하곤 “후배가 보기에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내곡동’을 ‘도곡동’의 반열로 끌어올리는 전략적 판단도 기발했다. 오 후보가 거기에서 어떤 차림으로 생태탕을 먹었는지, 다수의 유권자가 의문을 품게 만들겠다는 호기로운 결정이었다. 하물며 내부에서도 “내곡동 측량에 오 후보가 참석했다고 해도 (시장 취임 이전이기 때문에) 이해 상충이 아니다. 다른 사람 재산에 피해 준 것이 아니고 투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해찬 전 대표)이라고 봤는데도 말이다. 오 후보가 논란 있는 해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민주당으로선 오히려 큰일 날 뻔했다.

이쯤에서 현 정권 아래 중앙선관위의 균형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이 ‘위선’ ‘무능’ ‘내로남불’ ‘성 평등하지 않은’ 정당이라고 공증한 셈이 됐는데, 투표 참여 권유활동을 하며 시설물·인쇄물에 특정 정당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선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의 58조2항을 이유로 해당 문구를 불허해서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박수를 받았다. 이로 인해 교통방송의 ‘1 합시다’와 박영선 후보의 ‘합시다 1’ 사이 관련성은 미스터리로 남겨둘 수 있게 됐다.

사실 현재 여론은 국민의힘을 적극 지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경제·입소스의 지난달 26~27일 조사에 따르면 박영선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55.9%가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반면에 오 후보를 지지하는 건 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28.3%)라기보다는 정부·여당을 심판하기 위해서(48%)였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한 바에 달렸듯, 앞으로도 민주당이 할 바에 달렸다는 의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영국에서 ‘샤이 보수’가 일반적 현상이지만 ‘샤이 진보’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5년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은 열세 예측을 꺾고 승리했었다.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