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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냐?"…총기사고마다 등장하는 '돌격무기' AR-15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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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용량 탄창을 부착할 수 있는 AR-15 계열의 반자동 소총. '사냥용'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주에서 민간에 판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용량 탄창을 부착할 수 있는 AR-15 계열의 반자동 소총. '사냥용'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주에서 민간에 판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이 AR-15 계열의 반자동 소총을 쏘는 동영상을 본인의 트위터에 올렸다.
최근 잇따르는 대규모 총격 사건 이후, 돌격무기(Assault Weapon)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직접 총을 들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는 "1994년에도 돌격무기를 금지하는 법안이 나왔지만, 범죄를 줄이지는 못했다"고도 적었다.
그레이엄 의원이 들고 있던 AR-15는 대규모 총격 사건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22일 콜로라도 볼더의 식료품점에서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 사건에도 AR-15 계열의 총이 사용됐다. 9년 전 바로 인근에서 12명의 희생자를 낸 오로라 극장 총격 사건도, 3년 전 플로리다의 스톤먼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17명을 살해하는 데 쓰인 총도 모두 같은 계열의 반자동 소총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앞으로 이런 총을 팔지도, 갖지도 못하게 법을 다시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미국 내에선 '과연 가능하겠냐'는 회의론이 나온다.

◇규제를 피해간 AR-15

AR-15은 1950년대 총기업체 아말라이트가 개발한 소총이다. 이를 변형해 나온 제품을 AR-15 계열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미군이 사용하는 M16이다.
이후 '사냥총'이라는 명목으로 민간용 AR-15도 출시됐다. 반자동 방식에 대용량 탄창을 끼울 수 있는 이 돌격 무기에 총기 애호가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자 총기업체들은 꼼수를 부렸다. 총열을 짧게 줄이고, 개머리판 대신 팔에 붙일 고정대를 단 권총 형태의 AR-15를 내놓은 것이다. 콜로라도 총격범 아흐마드 알리사가 쓴 총도 이름은 루거 AR-556 권총이지만, AR-15를 기본으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변형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총기 규제가 한창이던 1999년에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AR-15 총이 생산됐다고 했다. 현재 미국 내에는 약 2000만 정의 AR-15 계열 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

1994년 돌격 무기와 대용량 탄창을 규제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그레이엄 의원 말대로 10년이 지나자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법무부는 2004년 "총기 규제법의 효과가 너무 작다"는 보고서를 냈고, 그해 의회는 이 법을 연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 팩트체커에 따르면 규제가 사라진 이후 10년 동안 6명 이상 희생자를 낸 총격 사건은 무려 183%나 증가했다. "법의 성격상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10년 만에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고 WP는 지적했다.
총기 규제 폐지론자들이 단골로 내놓는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총기 사고는 정신질환자 등이 일으키는 것이지 총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원조회는 강화하더라도 돌격 무기 판매 자체를 막아선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콜롬비아 의대 마이클 스톤 교수(정신과)가 2015년 일어난 235건의 대규모 총격사건을 분석한 결과, 정신질환이 있었던 범인은 52명(22%)이었다. 더 많은 나머지 사례에 관해선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대규모 총격 사건이 난 미국 콜로라도 볼더의 식료품점 앞에 '언제 돌격무기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겠느냐'는 의미의 팻말이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대규모 총격 사건이 난 미국 콜로라도 볼더의 식료품점 앞에 '언제 돌격무기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겠느냐'는 의미의 팻말이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인들은 규제를 원할까?

여론조사 상으로는 그렇다. 2019년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0%는 더 강력한 총기 규제를 지지하고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대용량 탄창 규제(71%)나 돌격 무기 규제(69%)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항상 뒷심이 부족해 법안은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가 총기 소유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는 프레임 앞에 돌아서는 이들이 많았다.
오히려 이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총기 구매량은 폭증했다. 지난 3월에도 잇따른 총격 사건에 대한 불안감, 총기 규제가 강화될 거라는 우려 탓에 새로 총을 사는 사람 수가 기록적으로 늘었다고 CNN이 1일 보도했다. 이런 신규 총기 소유자들은 결국 총기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전미 총기협회(NRA) 같은 이익단체의 든든한 배경이 된다고도 분석했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대규모 총격사건 때마다 총기 규제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의회에서 법안이 마련되지만, 규제 반대론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법안이 표류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되는 게 하나의 공식처럼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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