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1000개 난장판된 입구···고덕동 아파트 '택배 대란'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4.04 21:39

업데이트 2021.04.04 23:12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 인근에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이 금지됐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 인근에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이 금지됐다. 연합뉴스

"우리도 딱히 방법이 없네요. 1년간 받을 고객 항의 전화를 하루에 다 받은 것 같은데…."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가 택배 차량의 지상 도로 출입을 금지하자, 한 택배기사는 아파트 입구에 배달할 택배 박스를 내려놓고 있었다. 그는 걸어서 세대별로 배송하기는 어렵다며 "3개 택배사 탑차 4대가 입구 앞에 택배를 내려놓고 있다"고 했다.

4일 A아파트에 따르면 입주민회의 결정으로 지난 1일부터 아파트 단지 내 지상 도로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했다.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 우려 등이 이유였다. 아파트 측은 긴급차량이나 이사차량 등을 제외하고 택배 등은 모두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반 택배 차량(탑차)은 차체가 지하주차장 진입 제한 높이(2.3m)보다 높아 문제가 발생했다. 주차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약 5000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에선 곧바로 '택배 대란'이 벌어졌다. A아파트 후문 인근 경비실 앞엔 택배 상자 1000여개가 줄줄이 쌓여있었다. 아파트 입구까지 택배를 직접 찾으러 온 주민들의 불만도 컸다.

주민들은 "아내가 김치가 쉰다고 빨리 가져오라고 해 급히 왔다. 맞벌이하는 사람들은 뙤약볕에 몇 시간 동안 택배를 놔둬야 하는데 음식이 상하면 어떡하냐" "낮에는 나 같은 노인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겠나" 등의 반응과 함께 물품 손상과 분실을 우려했다.

택배기사들도 난감하다. 한 택배기사는 "지하주차장 출입이 가능한 저상차량으로 바꾸라는 아파트 측 요청도 있었지만, 개인사업자인 기사들이 사비 수백만원과 수개월의 시간을 들여 차를 개조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주민과 택배기사 모두 불편을 겪고 있지만, 아파트 측은 지난해부터 출입통제 방침을 충분히 예고했다며 "일부 기사만 '배짱 영업'을 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관리사무소 측은 "애초 이 아파트는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 '공원형 아파트'로 설계됐다"며 단지 내에서 어린아이가 차 사고를 당할 뻔 한 적도 있었고, 택배차가 자주 다니면 보도블록이 파손돼 관리비 부담이 증가하므로 주민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택배 대란이 이어지자 A아파트 주민 3500명가량이 가입한 온라인커뮤니티에선 대안을 찾으려는 논의가 시작됐다. 일부 주민들은 택배 차량을 위한 동선을 만들거나, 노인들이 각 세대에 재배송하는 이른바 '실버 택배'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도 택배대란이 발생했다. 아파트측은 택배기사들에게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무인택배함을 이용하라고 안내했지만, 이 일대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층고(2.1~2.3m)는 택배 차량 높이(2.5~3m)보다 낮아 택배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서 발생했던 문제였다. 뉴스1

지난 2018년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도 택배대란이 발생했다. 아파트측은 택배기사들에게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무인택배함을 이용하라고 안내했지만, 이 일대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층고(2.1~2.3m)는 택배 차량 높이(2.5~3m)보다 낮아 택배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서 발생했던 문제였다. 뉴스1

지난해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아파트 정문 인근에 택배 물품들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아파트 정문 인근에 택배 물품들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앞서 다산신도시·송도서도 '택배대란'

한편 이 같은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도 아파트 측이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출입을 금지하면서 갈등 양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몇해 전부터 입주민들의 편의 공간을 늘리기 위해 아파트를 지상공원형으로 설계하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 단지 내 도로를 만들지 않는 대신 지하주차장을 통해 각 동에 차량이 접근하도록 하고, 지상면엔 녹지공간을 조성해 공원·산책로나 커뮤니티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의 높이 기준을 정해놓은 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해 문제가 됐다. 최저 층고 기준이 2.3m에 불과해 건설사들이 이 '최저 기준'에만 맞춰 주차장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최저기준 이상으로 주차장 높이를 높이지 않은 건 건축 비용 때문이다.

신축 지상공원형 아파트가 늘어나며 전국에서 비슷한 문제가 속속 발생하자 정부도 관련 규정을 손보기에 이른다. 지난 2019년 1월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를 2.7m로 상향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A아파트는 정부의 규정 변경 이전 건축 승인을 받아 주차장 입구 상향이 반영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지정 택배 장소를 정하거나 단지 내 재배송을 하는 방식으로 택배사와 아파트 주민 간 의견 조율 외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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