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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온난화에 예보도 어려워져…'눈높이 예보' 노력"

중앙일보

입력

박광석 기상청장이 31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 청장은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 예측도 까다로워지고, 국민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선 기자

박광석 기상청장이 31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 청장은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 예측도 까다로워지고, 국민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선 기자

올해 서울의 벚꽃은 공식적으로 3월 24일 피었다. 1922년부터 관측한 이래 가장 이른 개화로, 평년(4월 10일)보다 17일 빨랐다. 올해 3월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5.1도나 높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닥친 기후 온난화는 지난달 25일 기상청이 발표한 ‘신(新) 기후 평년값(직전 30년간의 기후 평균)’에서도 드러났다. 전국 평균 기온의 새 평년값은 12.8℃로, 10년 만에 0.3℃ 올랐다. 2010년대 십년 간의 평균 기온은 1980년대보다 0.9℃ 상승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만난 박광석(54) 기상청장은 “새로 나온 평년값을 바탕으로 연평균 기온 12℃ 선을 지도에 그려보고 깜짝 놀랐다. 10년 새 이렇게까지 기후 변화가 뚜렷해졌구나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전면 통제된 서울 여의도 국회 뒤 벚꽃길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전 전면 통제된 서울 여의도 국회 뒤 벚꽃길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10년 만에 서산 날씨가 고양까지 올라가"

박 청장은 “온난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게 뚜렷하게 수치로 드러난다”고 했다. 10년 전 평년값(1981~2010년 평균)은 충남 서산에서 11.9도를 기록했지만, 지금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같은 기온이 나타난다. 10년 전 충남 보령의 평균기온이 12.4도였지만, 지금은 경기도 수원시도 12.5도까지 올랐다.

박 청장은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12℃ 선이 북상했고, 중부 내륙지방도 평균 기온이 큰 폭으로 올랐다"며 “10년 전 충남 지역에서 나타난 기온대가 현재 경기 북부까지 북상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온난화, 특히 저소득층 폭염 피해 클 것" 

 전국에 최강 폭염이 맹위를 떨친 지난 2018년 8월 1일 오후 강원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홍천 기온은 40.6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전국에 최강 폭염이 맹위를 떨친 지난 2018년 8월 1일 오후 강원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홍천 기온은 40.6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앞서 1월 기상청이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고탄소'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반도 기온은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1.8도, 먼 미래에는 최대 7도까지 오른다.

박 청장은 기후 온난화가 인간, 특히 취약계층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온난화가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여름이 거의 4개월에 육박하게 된다"며 "2018년 30일간의 폭염이 이어져 저소득층의 여름나기가 힘겨웠는데, 앞으로도 이런 패턴의 폭염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그는 환경부에서 자원순환국장, 환경정책관, 자연환경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2017년 대통령정책실 기후환경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며 정부의 기후환경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박 청장은 빠르게 진행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세계기상기구(WMO)의 아시아 지역 집행이사에 당선된 박 청장은 아시아 지역 회원국에 기후 보고서 발간을 제안한 상태다. 그는 "중국 내몽골의 사막화와 가뭄이 우리나라의 황사와 관련 있듯 아시아 지역 전체의 기후 정보를 파악하면 재난 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석 기상청장은 지난 1월 세계기상기구(WMO)의 집행이사에 당선된 뒤, 아시아지역 기후 보고서 발간을 제안했다. 김상선 기자

박광석 기상청장은 지난 1월 세계기상기구(WMO)의 집행이사에 당선된 뒤, 아시아지역 기후 보고서 발간을 제안했다. 김상선 기자

"온난화로 정확한 예보 어려워… '체감 적중률' 높이려 노력"

온난화의 가속화는 기상 예보에도 영향을 준다. 박 청장은 “지난해 역대 가장 긴 장마, 6월 기온이 7월보다 높은 현상, 한파와 따뜻한 날씨를 오간 올 1월 날씨와 같이 이상기상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며 "기후 온난화로 인해 변동성이 커져 세계적으로 정확한 날씨예보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장마 당시 기상청은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박 청장은 “수치상 예보 정확도만 따지면 이웃 나라 일본과 유사하나, 국민이 느끼는 체감 적중률은 다를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시민들은 날씨가 맑을 줄 알았는데 비가 올 때 예보의 오차를 크게 느낀다. 국민이 느끼는 불편함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총장은 "국민이 실제로 원하는 예보의 종류를 조사하고 반영해서 개편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경남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 두곡마을 일대가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왼쪽 편은 전남 광양시와 연결된 섬진강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경남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 두곡마을 일대가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왼쪽 편은 전남 광양시와 연결된 섬진강이다. 연합뉴스

"한국 예보 선진국 근접…AI 접목해 예측능력 키울 터"

예보의 정확도는 관측자료, 분석모델, 예보관의 역량 등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박 청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독자적인 수치 모델을 개발했고, 관측 역량도 뛰어나 선진국에 근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상관측을 보강하려 관측기지를 추가로 짓고 있고, 예보관의 피로도를 낮추고 역량을 발전시킬 시간을 확보하려 인력을 충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올겨울의 ‘북극 한파’, 지난해 장마 모두 팽창한 북극의 공기가 중위도로 밀려 내려오면서 생긴 기상현상이다. 이처럼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일어나는 기상현상을 예측하기 위해 박 청장은 전 세계 단위의 분석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현재 석 달 단위로 극지연구소‧APEC 기후센터 등과 함께 기후예측 회의를 열고 전 세계의 기상 데이터와 모델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있다”며 "앞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고 기후변화 연구인력을 더 확보해 기후 예측 능력을 키울 것”이라고 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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