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가치 공유” 中 “경제 통합”…“韓, 우리 편 서라” 명확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04 15:33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앞줄 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앞줄 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골적인 표현만 없었지 ‘우리 편에 서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및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각기 열린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협의(2일, 현지시간)와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3일) 이야기다.

美 “인도태평양 안보 우려 협의”  

미 백악관은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간 협의 뒤 언론 성명을 내고 “3국 실장은 미국의 대북 정책 리뷰에 대해 상의하고,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를 포함한 공동의 우려 사안에 대해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공통의 안보 목표를 수호하고 진전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변함없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의 핵심은 중국이라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 관측이다.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안보 협의체 등 한국이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주제는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역내 중국의 도전 문제에 대해 한ㆍ미ㆍ일이 머리를 맞댔다고 시사한 것이다.

이번 결과물의 발표 주체는 백악관이며, 형식도 ‘언론 성명(press statement)’이지 ‘공동 성명(joint statement)’은 아니다.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되, 3국이 조율했다기보다는 미국의 시각을 반영해 작성한 발표문이라는 뜻이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번 협의 소집의 목적 자체가 북핵 문제든, 글로벌 이슈이든 한ㆍ미ㆍ일이 공통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따라서 결과물도 이견보다는 공통의 입장을 부각시키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협의에서는 중국에 연합해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중 견제 ‘키 맨’ 캠벨도 참여  

실제 백악관은 성명에서 “3국 안보실장은 공유하는 민주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공동의 비전을 진진시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세우는 ‘가치 외교’를 중심으로 동맹ㆍ우방국과 연합해 중국의 규범 위배 행위에 맞서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이와 관련,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담당 조정관도 협의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직제상으로 NSC를 이끄는 것은 설리번 보좌관이지만, 사실 바이든 백악관의 대중 정책 ‘키 맨’은 캠벨 조정관이다. ‘아시아 차르’로 불리며 중국에 맞서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는 그가 참여한 것 자체가 이번 3국 협의의 목표가 한ㆍ미ㆍ일 대중 견제 연합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 담당 조정관(왼쪽 두번째)이 미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에서 인삿말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오른쪽에 앉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 담당 조정관(왼쪽 두번째)이 미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에서 인삿말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오른쪽에 앉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간 회담 뒤 한국이 난감해할 만한 주제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은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1월 왕 위원 방한 때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협력을 요청했다고 공개했는데, 샤먼 회담 뒤 중국 외교부의 보도자료에는 일대일로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中 “한ㆍ중 경제 통합, 이해 공동체”

하지만 속내까지 숨긴 것은 아니었다.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왕 위원은 “중국과 한국의 경제는 고도로 통합돼 있으며, 이해의 공동체가 됐다”며 “중국은 5G, 집적 회로,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협력 강화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과 기꺼이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경쟁하는 첨단기술 분야를 협력의 영역으로 콕 짚은 것으로, 한국 보도자료에는 없는 내용이다. 특히 5G는 중국산 화웨이 장비 사용을 염두에 두고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맞서 기술 자립을 위해 집적 회로 생산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두 고위급 협의에서 가장 우선시한 것은 역시 북핵 문제였다. 올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계기로 삼으려던 도쿄 올림픽은 정상 개최 자체가 힘든 데다 한ㆍ일 관계 악화 등으로 점점 동력이 떨어지는 분위기다. 이에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조속한 북ㆍ미 협상 재개를 설득하는 데 외교력을 동원하고 있다.
서울에서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이 열린지 불과 4개월 전인데, 정 장관이 이번에 샤먼까지 가서 왕 위원과 또 만난 것도 북핵 문제와 관련한 협력을 구하기 위한 목적이 커 보인다.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도록 설득, 북ㆍ미 간 협상 재개를 위한 여건을 마련하려면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훈 “대북 관여” 백악관 “제재 이행”

하지만 두 협의에서 북핵 문제를 두고 묘한 공감대 차이가 있었다. 서훈 실장은 2일 한ㆍ미ㆍ일 협의 뒤 특파원들과 만나 “한ㆍ미ㆍ일은 북ㆍ미 협상의 조기 재개를 위한 노력이 계속 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는 점을 성과로 설명했다. 3자 협의와 별도로 열린 한ㆍ미 안보실장 협의에 대해서는 “우리 측은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관여의 중요성을 강조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2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 참석한 3개국 외교 사령탑. 왼쪽 사진부터 제이크 설리번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로이터·신화=뉴시스, 중앙포토]

2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 참석한 3개국 외교 사령탑. 왼쪽 사진부터 제이크 설리번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로이터·신화=뉴시스, 중앙포토]

그러나 백악관 언론성명에 관여나 대화라는 표현은 없었다. “3국 안보실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완전한 이행이 긴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 했다”며 제재 준수를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에 대해 “3국이 대북 압박을 계속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고 해석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트럼프 행정부를 포함, 과거의 대북 정책 검토를 마친 미국은 북한이 여전히 사찰과 검증 등 비핵화의 핵심 과정에 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보고 기대치를 낮추는 듯 하다. 백악관이 제재를 강조한 것도, 이제 북한이 진정성 있게 비핵화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면 압박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실질적 수단이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中 “北의 합리적 안보 우려 해결해야”

실제 3국 안보실장 협의에서 미국은 북한 정세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적 입장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토론도 했는데, 견해가 한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각국이 입장과 평가를 교환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진정성에 대해 한ㆍ미 간 평가가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왕이 위원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모든 당사자들이 노력해야 한다”며 “한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대화와 관여를 통한 비핵화라는 한국의 입장과 일치한다.
왕 위원은 그러면서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며 미국의 적대시정책에 대응해 자위적 수단으로 핵을 개발했다는 북한의 입장을 사실상 대변했다.

백악관 “한ㆍ일, 양자관계 중요성 강조”

한편 백악관이 3국 협의 결과 자료에서 한ㆍ일 관계를 별도로 특정해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일본과 한국은 그들의 양자 관계와 한ㆍ미ㆍ일 3국 협력이 국민과 지역, 세계의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보는 앞에서 한ㆍ일이 양국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3자 협의에 앞서 서훈 실장과 기타무라 국장 간에 50분 간 진행된 양자 협의에서는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 다른 양자 간 현안은 제대로 짚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의 관계 개선 촉구에 일본은 한국이 먼저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라고 맞받았는데, 관련한 상황 진전은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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