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민간‘데스카페’, 정부‘인생회의’…日의 죽음 공론화

중앙일보

입력 2021.04.04 13:00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68) 

일본에서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80%를 넘어서고 있다. 고령∙다사사회에서 죽음은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개인 차원에서 죽음 교육, 종활, 엔딩노트 등 죽음을 준비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죽음’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주제지만 ‘데스카페’라는 장소에선 죽음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한다. 스위스의 사회학자 버나드 크레타즈가 최초로 만든 ‘카페 모텔(Café Mortel)’이 그 모델이다. 버나드는 1982년 생사학연구회를 설립하고, 지금까지의 장례형태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1999년 인류학자였던 부인과 사별을 계기로 편한 죽음에 관해 대화하는 카페 모텔을 세웠다.

인생의 가치관은 그 사람의 생활방식을 결정하거나 의료∙케어를 받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나 질병에 걸리거나 케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이런 의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진 pixabay]

인생의 가치관은 그 사람의 생활방식을 결정하거나 의료∙케어를 받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나 질병에 걸리거나 케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이런 의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진 pixabay]

영국의 사회기업가 존 언드우드는 버나드의 카페 모텔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2011년 한계가 있는 생을 의미 있게 하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비영리단체 ‘데스카페(Death Café)’를 설립했다. 최근 데스카페는 중남미를 중심으로 세계 60개 국가 이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91년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비영리단체 ‘내추럴데스센터(Natural Death Center)’가 설립되었다. 2009년에는 영국 보건성의 지원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연합(Dying Matters)’이 창설되었다. 이들 단체는 죽음을 생각하거나 토론할 자리를 만들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연구를 하고 운동도 펼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연합은 매년 5월에 인식주간을 설정해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학습회 등을 전국 각지에서 개최한다.

데스카페 참가자는 다과를 먹으면서 처음 만난 사람과 죽음에 관해 대화한다. 사별의 슬픔을 위로하거나 카운슬링을 하는 등 결론을 내리는 장소가 아니다. 종교, 국적,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차를 마시며 함께 죽음에 관해 대화한다. 종말기, 간병, 가족의 죽음 등의 경험이 있는 사람,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은 사람 등 누구나 차별 없이 연계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존 언더우드는 웹사이트 데스카페(deathcafe)에 가이드라인을 공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중에서 개개인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 특정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말 것, 카운슬링과 고민 상담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3가지 사항을 중시한다. 웹사이트에서는 각 국가의 데스카페에 등록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2015년 전후해 데스카페가 전국에서 개최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등록유무, 가이드라인을 따지지 않고, 다과를 제공하며 편한 분위기에서 죽음을 이야기한다. 일본에서 운영되는 데스카페는 통일된 규정과 등록제도가 없다. 사회복지법인, 사찰, NPO법인, 장의회사 등 다양한 주체가 운영하고 있다. 운영 주체마다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 고독사와 안락사, 죽음 강연회, 워크샵, 영화, 입관체험, 조사쓰기, 엔딩노트 작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데스카페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죽음 대화의 장벽을 낮추고, 편안한 커뮤니티 기능이 있는 오픈된 공간이다. 카운슬링과 슬픔케어가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위로의 기능도 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죽음을 탐구하는 학습의 기능도 있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터부시한다. 어디에서 어떤 의료케어 서비스를 받고 싶은지 생전에 대화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인생 말년에 의료와 요양에 관해 가족 또는 의료인과 대화하는지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절반 이상(55.1%)이 대화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39.5%였다. 가족이나 의료진과 사전에 대화하는 것을 64.9%가 찬성했다. 만일의 경우 어떤 의료와 요양을 받을 것인지 미리 서면에 작성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66.0%)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91.3%)은 의료와 케어에 관한 의사 표시를 서면으로 작성하지 않고 있다. 즉 많은 사람은 대화의 중요성에는 찬성하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적었다.

데스카페 참가자는 처음 만난 사람과 죽음에 관해 대화한다. 사별의 슬픔을 위로하거나 카운슬링을 하는 등 결론을 내리는 장소가 아니다. 종교, 국적,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함께 죽음에 관해 대화한다. [사진 pixabay]

데스카페 참가자는 처음 만난 사람과 죽음에 관해 대화한다. 사별의 슬픔을 위로하거나 카운슬링을 하는 등 결론을 내리는 장소가 아니다. 종교, 국적,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함께 죽음에 관해 대화한다. [사진 pixabay]

죽음을 터부시하는 풍토에서는 다사사회의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다. 다사사회에는 많은 과제가 있다. 죽음을 맞이할 때 마음가짐,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케어라는 과제가 늘어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국가, 지자체, 시민은 함께 이러한 과제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인식하고 일본 정부는 2017년 사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데스카페의 취지를 공론화했다. 구체적으로 2017년부터 6회에 걸쳐 ‘인생 최종단계에서 의료 보급∙계발 형태에 관한 검토회’를 개최했다. 2007년 이 가이드라인이 수립된지 10년이 지나 사회 환경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령∙다사사회가 빠르게 진행돼 인생의 최종단계와 관련한 다양한 사회적 과제가 등장하고 있다.

검토회는 영국과 미국에서 활용하는 ‘사전의료계획(ACP)’의 개념을 참고해 시대에 맞는 대책을 점검했다. 최종적으로 2018년 3월 인생 최종단계의 의료결정 프로세스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어디에서 어떤 의료서비스를 받을 것인지 대화하는 ACP를 모든 국민에게 보급하는 것이 가이드라인의 핵심내용이다.

일반 국민이 ACP를 이해하기 쉽고 친근감을 주기 위해 ‘인생회의’라는 애칭을 사용하고 있다. 인생회의란 인생의 가치관과 희망, 어디에서 어떤 의료와 케어를 희망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의뢰할 사람과 대화한다는 의미다. 사람에게 인생의 가치관과 희망은 그 사람의 생활방식을 결정하거나 의료∙케어를 받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나 생명에 직결되는 질병에 걸리거나 케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대화해 의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심신 상태의 변화에 따라 본인의 의사는 바뀔 수 있다. 개인이 어떤 삶의 방식을 원하는지 평소에 반복해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이 위험한 사람은 스스로 의사를 전달하지 못할 상태에 이르기 전에 가족 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정해둘 필요가 있다. 만약 그런 상황에 있을 때 가족 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생각하고 심정을 상상하면서 의료와 케어팀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병원에서 연명치료에 대응하고, 재택의료∙간병 현장에서 중요한 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복해서 대화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고, 본인과 가족, 의료진이 공유하는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후생노동성은 환자의 상담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 의료∙케어팀의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ACP의 보급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