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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선 밥 먹고 잘 뿐인데...'영끌' 아파트? 난 캠핑카 산다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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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춘씨가 캠핑을 즐기고 있다. 본인 제공

래춘씨가 캠핑을 즐기고 있다. 본인 제공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집안에서 하는 게 밥 먹고, 씻고, 자는 게 전부인데 굳이 콘크리트 집(아파트)에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말에 바로 캠핑카를 알아봤죠." -래춘씨(활동명·30대)

비취색 제주 바다와 맞닿은 공터에 덩그러니 주차된 1톤짜리 캠핑카. 12㎡(3.6평) 남짓한 내부엔 접시, 프라이팬 같은 주방기구와 대형 모니터 3대가 연결된 컴퓨터 등 생활 집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유튜버 래춘씨가 사는 집입니다.

[밀실]<제64화> #캠핑카·버스에서 사는 '밴 라이프'

래춘씨처럼 정해진 주거지 없이 자동차를 집 삼아 지내는 생활을 '밴 라이프'(Van Life)라고 부릅니다. 외국에서 낡은 밴을 개조해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유래했죠.

유튜브에 '밴 라이프'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밴 라이프'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유튜브 캡처

몇몇 유별난 이들의 기행으로 보인다고요?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길 거부하고 밴 라이프를 꾸리는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치솟는 집값에 대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서 집 사는 것보다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캠핑카 생활이 이들에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거죠.

밀실팀이 밴 라이프를 선택한 청년 3명을 만났습니다. 바퀴 달린 집에서의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요?

'집-직장' 왕복이 안정적? 여행하듯 살고파 

지난달 25일 제주도에서 밀실팀과 인터뷰하는 래춘씨. 석예슬 인턴

지난달 25일 제주도에서 밀실팀과 인터뷰하는 래춘씨. 석예슬 인턴

"회사와 학교의 공통점이 1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려고 100명의 실패자를 계속 만드는 구조잖아요. 그런 시스템에서 버티는 게 안정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10년째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밴 라이프를 택한 이유를 묻자 래춘씨가 되물었습니다. 유명 방송국에서 편성·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집과 직장을 왕복하는 삶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는 생각에 밴 라이프를 시작했죠.

다른 이들도 이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남들 눈에 번듯한 삶을 살고자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여행하듯 자유롭게 지내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요.

캠핑 중인 김수향씨. 유튜브 'Vanlife Korea 수향' 캡처

캠핑 중인 김수향씨. 유튜브 'Vanlife Korea 수향' 캡처

지난해 밴 라이프를 시작한 유튜버 김수향(29)씨는 6년 전 떠난 호주 워킹홀리데이 덕분에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 모두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가 아닌 삶의 목표에 대해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취업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하다가 이 생활을 택했다"고 말하더군요.

물·전기 부족은 일상, 그마저도 매력

어느 하나 거저 주어지는 게 없는 생활. 불편함은 밴 라이프에서 마땅히 감수해야 할 조건입니다.

밀실팀이 만난 이들은 생계유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원격근무가 일반화하면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수입을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월세 등 주거비가 사라지면서 생활비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고요.

지난해 태풍 '마이삭'이 북상했을 때 래춘씨가 차 안에서 찍은 영상. 유튜브 '래춘씨 생존기' 캡처

지난해 태풍 '마이삭'이 북상했을 때 래춘씨가 차 안에서 찍은 영상. 유튜브 '래춘씨 생존기' 캡처

다만 물과 전기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2년 전 24인승 버스를 사서 개조해 살고 있는 유튜버 지금게르(활동명·28)는 "해수욕장 개수대나 공원 수돗가에서 물을 받지만 한계가 있다.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3~4일에 한 번씩 물을 채우러 간다"고 했습니다.

전기사용량이 많은 여름은 특히 고역입니다. 캠핑용 태양광 발전기가 있지만, 열대야가 며칠간 이어지면 선풍기도 없이 무더운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다고 해요.

하지만 이 불편함도 밴 라이프의 매력이라고 합니다. 래춘씨는 "내가 일한 만큼만 정확히 물과 전기를 쓸 수 있어서 그런지 더 능동적으로 살게 된다. 집에서 수도꼭지 틀면 물이 콸콸 나오던 예전보다 삶에 주인 의식이 생겼다"고 밝혔죠.

'미X 놈' 소리 듣지만, 사람 사는 방식일 뿐

지난달 31일 전남 순천에서 밀실팀과 만난 김수향씨. 백경민

지난달 31일 전남 순천에서 밀실팀과 만난 김수향씨. 백경민

남과 다르게 생활하면서 받는 주변의 시선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김수향씨는 "여자라서 그런지 특히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 요즘도 거기서 자냐'고 묻는데 그런 반응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놨죠.

래춘씨도 집을 나와 캠핑카로 이사할 때 가족과 지인들에게 '미X 놈'이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직 우리 사회가 다양한 주거 형태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것도 사람 사는 방식이라 이해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게르가 차 안에서 식사하는 모습. 유튜브 '지금게르' 캡처

지금게르가 차 안에서 식사하는 모습. 유튜브 '지금게르' 캡처

아직도 밴 라이프가 청년들의 치기 어린 일탈로 보이시나요? 밀실팀이 만난 이들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밴 라이프를 계속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나중에 부동산을 살 정도로 돈을 모아도 차 안에서 살 건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죠.

"가본 여행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서 버스 한 대 세울 수 있는 작은 땅을 살 것 같아요. 더 여유가 있으면 아파트를 살 게 아니라 45인승 버스를 사서 그 안에서 살겠죠. 하하." -유튜버 지금게르

박건·백희연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석예슬·장유진 인턴, 백경민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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