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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상 받은 마스크, 돈 2배 내고 해외직구하게 만든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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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내 기술로 만든 공기청정 마스크가 규제당국의 심사 지연으로 국내에선 출시가 불투명해졌다. 마스크에 공기 청정기를 결합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해외 가전쇼에서 혁신상도 받았지만 해외 12개국서 판매되는데 정작 국내에선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국산 제품을 비싼 값에 해외 직구(직접구매) 하는 소비자들 사이에 불만도 커지고 있다.

황사가 불어닥친 지난달 29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이 온통 희뿌옇게 보인다. 연합뉴스

황사가 불어닥친 지난달 29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이 온통 희뿌옇게 보인다. 연합뉴스

식약처, 전자식 마스크 다섯달째 심사

4일 LG전자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9월 초소형 환기팬과 헤파필터(H13 등급), 호흡감지센서 등을 탑재한 퓨리케어 전자식 마스크를 의약외품으로 허가받기 위해 식약처에 심사를 요청했다. 해당 제품은 LG전자 퓨리케어 공기청정기 특허 기술과 노하우를 적용한 '웨어러블 공기청정기'다. 퓨리케어 전자식 마스크는 지난해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 2020에 처음 공개됐고 올 1월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쇼인 CES 2021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통상 식약처는 부직포 보건용 마스크는 55일(근무일 기준), 신소재를 활용하거나 신물질을 쓴 마스크의 경우 7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식약처는 LG전자의 마스크에 대해 지난 2월까지 다섯 달째 심사를 이어가며 자료 보완을 요청했다.

LG전자, 결국 심사 철회…국내 출시 불투명 

LG전자 관계자는 "예상 외로 심사가 지연돼 결국 지난 2월 말 심사를 자진 철회했다"며 "국내 출시 계획 전체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새로운 소재와 기술이 적용된 전례 없는 제품이라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LG전자 전자식 마스크. 내부에는 실리콘과 교체식 마스크 패드, 호흡센서가 탑재됐고 겉면에는 헤파필터와 초소형 팬이 있다. [사진 LG전자]

LG전자 전자식 마스크. 내부에는 실리콘과 교체식 마스크 패드, 호흡센서가 탑재됐고 겉면에는 헤파필터와 초소형 팬이 있다. [사진 LG전자]

현재 LG 퓨리케어 전자식 마스크는 해외 12개국에서 공산품으로 출시해 이미 판매 중이다. 지난해 10월말 홍콩과 대만을 시작으로 올해는 베트남·태국·스페인·러시아 등으로 판매 국가를 확대했다. 가격은 홍콩 기준 1180 홍콩달러(약 17만3000원)다.

LG전자는 애초 한국에서는 공산품이 아닌 의약외품으로 판매 전략을 짰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의 지침에 맞지 않는 마스크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 등 마스크 관련 규제가 많아져서다. 방대본 관계자는 "LG전자의 제품은 식약처의 의약외품 허가를 받지 못해, 현재 방대본 지침상 마스크로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보건용 마스크로 안면부의 습기 저항이나 누설률 등을 제대로 심사받은 뒤 대대적인 홍보를 하겠다는 전략도 있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식약처에서 의약외품으로 허가된 것 외에는 마스크로 대체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방대본 홈페이지 캡처]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식약처에서 의약외품으로 허가된 것 외에는 마스크로 대체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방대본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 "규제 바꿔 신기술 시장 진입 도와야" 

국내 소비자들은 코로나19에 황사까지 더해지자 일부 맘카페 등을 중심으로 해외 공동 직구를 하는 등 LG 퓨리케어 전자식 마스크 구하기에 나섰다. 현지 판매가는 17만~18만원 선인데, 해외 직구로 관세·배송비 등이 더해지면 30만원대로 가격이 뛴다. 일부 소비자는 온라인 공공민원창구인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왜 국산제품을 비싸게 해외 직구로 사야 하느냐"며 항의 글까지 남기고 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로운 기술 제품이 등장했을 때 기존의 기준을 곧이곧대로 적용해 심사하면 결국 시장 진입을 막게 된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핵심 기술 수준'으로 심사하고 신기술을 받아들여야 기술발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한국은 국가가 기술 표준을 정해놓고 이에 부합되는 것만 받아들이는 방식의 포지티브(positive) 규제를 시행하고 있어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미국 등 선진국처럼 사고에 대한 책임은 묻되 신기술을 허가해주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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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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