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배틀그라운드] 분당 4200발, 초음속 미사일 요격···항모 최후무기 국산화

중앙일보

입력 2021.04.04 06:00

업데이트 2021.04.04 11:20

굉음과 함께 수 백발의 총탄을 쏟는다. 총구가 향한 바다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에 폭음과 함께 불꽃이 번쩍인다. 한국 해군 항공모함을 노리고 접근하던 북한 미사일에 명중한 것이다. 2030년대 초반 동해에서 눈 깜짝할 순간에 이뤄진 전투다.

근접방어무기 국내 개발 결정
초음속 미사일도 막아낼 전망

바다에서 함정을 공격하는 탄도 미사일은 탄도탄 요격 미사일로 대응한다. 하지만 미사일 요격에 실패하거나 비교적 속도가 느린 순항 미사일 공격은 함대공 유도탄(해궁)으로 방어한다.

‘만에 하나’ 두 번의 기회가 모두 실패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미사일을 미사일로 막지 못한 경우, 마지막 순간에는 근접방어무기(CIWS)가 분당 4200발의 총탄을 쏟아내며 방어막을 친다.

해군 함정에 탑재한 근접방어무기 골키퍼가 해상으로 사격하고 있다. [사진 해군]

해군 함정에 탑재한 근접방어무기 골키퍼가 해상으로 사격하고 있다. [사진 해군]

이처럼 함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CIWS를 국내 기술로 개발한다.

지난달 31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근접방어무기체계-II’ 사업 방안을 심의한 뒤 국내 개발로 결정했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4500억원을 투입해 개발하고 10여대에 조금 못 미치는 시제품과 실전 무기를 생산한다.

해외에서 구매하다가 국산화에 나선 이유가 있다. 한국은 레이시온사의 팰렁스, 네덜란드 탈레스사의 골키퍼 등 2가지 CIWS를 도입해 운용했다. 여기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2017년 6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지대함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했다. 사진은 동해상에 설치된 목표선박을 타격하는 모습. 북한은 최근에도 신형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성능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2017년 6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지대함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했다. 사진은 동해상에 설치된 목표선박을 타격하는 모습. 북한은 최근에도 신형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성능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하지만 골키퍼가 단종된 이후 팰렁스만 도입했는데 최근 추가 물량 가격이 올라갔다. 팰렁스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다. 앞으로 해군 함정을 도입할 때마다 같은 고민을 반복해야 한다.

조만간 시작할 팰렁스 창정비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관련 기술 이전을 거부하고 미국 현지에서 직접 수리해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부담하는 비용은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국내 개발 CIWS는 경항모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과 호위함(FFX-Ⅲ급) 등 해군의 최신 함정에 장착될 예정이다. 사용 기간이 오래된 기존 CIWS 수 십문도 단계적으로 교체할 전망이다.

해외 업체 시장 독점, 기술 이전도 거부

러시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지르콘. [사진 유튜브 캡처]

러시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지르콘. [사진 유튜브 캡처]

단순 국내 조립이 아니다. 기존 CIWS보다 성능이 올라간다. 기존에는 아음속(약 시속 1100㎞) 미사일만 대응할 수 있었다. 이제는 초음속 미사일까지 요격이 가능할 수준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최근 개발된 순항미사일에는 램 제트 엔진을 장착하면서 대략 마하 4(약 시속 4800㎞) 수준까지 빨라졌다.

보는 눈도 좋아졌다. 기계식 레이더와 달리 ‘전자식 능동 위상 배열 레이더(AESA)’를 탑재해 더 먼 거리에서 발견해 더 빨리 대응에 나설 수 있다. 이전보다 탐지 능력이 더 정밀한 것도 당연하다.

함대공미사일 해궁의 시험발사. 해궁이 표적물을 요격하고 있다. [국방과햑연구소 유튜브 계정 캡처]

함대공미사일 해궁의 시험발사. 해궁이 표적물을 요격하고 있다. [국방과햑연구소 유튜브 계정 캡처]

2018년 12월 개발을 완료한 함대공 유도탄 ‘해궁’의 최대 사거리는 20㎞ 수준이다. 해궁이 요격하지 못한 미사일이 함정에 접근하면 CIWS가 대응한다.

함정에서 5㎞ 떨어진 거리에서 교전이 이뤄진다. 여기에 개틀링건이 쏟아낸 포탄이 화망을 만들어낸다. 마하 3~4 속도를 내는 미사일은 1초에 약 1.2~1.6㎞를 이동한다. 요격에 주어진 시간은 불과 3초 정도뿐이다.

함정 주변에 침투하는 고속정도 자동으로 격파할 수 있다. 기존 골키퍼는 수동으로 조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자동ㆍ수동ㆍ반자동 모두 가능해진다. 지상에 설치할 경우 공군 활주로 및 군 지휘 시설 등 거점 방어도 가능하다.

기존보다 성능 키워, 다양한 활용 가능성

함정에 탑재하는 근접방어무기 골키퍼. LIG넥스원 구미 생산본부에 가져와 창정비 한다. [영상캡처 김은지]

함정에 탑재하는 근접방어무기 골키퍼. LIG넥스원 구미 생산본부에 가져와 창정비 한다. [영상캡처 김은지]

문제는 기술이다. 그래서 국내 업체가 충분한 능력을 갖췄는지 확인해 봤다. 지난달 15일 구미 LIG넥스원 생산본부를 다녀왔다.

CIWS 국내 개발은 모든 부품을 새로 개발하는 건 아니다. 기존에 쓰던 골키퍼 함포의 주요 부품을 동일하게 활용한다. 군 당국은 30㎜ 탄을 쏘는 골키퍼가 20㎜ 탄 팰렁스보다 파괴력이 더 크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국산화는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골키퍼 장착된 30㎜ GAU-8 개틀링건은 기술도입을 통해 화포 전문 국내 업체가 생산할 계획이다. ‘탱크킬러’로 불리는 A-10 공격기에 장착하는 기관포다. 압도적인 화력이 장점이다.

창정비 하는 골키퍼는 더미탄을 사용해 실제 사격 조건과 같은 시험을 한다. [영상캡처 강대석]

창정비 하는 골키퍼는 더미탄을 사용해 실제 사격 조건과 같은 시험을 한다. [영상캡처 강대석]

각종 부품을 종합하는 능력을 갖춘 뒤 개별 부품의 국산화 여부는 판단할 예정이다.

LIG넥스원은 뜯어보고 고치며 기술을 얻었다. 2018년부터 골키퍼 창정비를 시작했다. 한국 해군이 쓰던 골키퍼를 공장으로 가져와 완전 분해 한 뒤 다시 조립했다.

본격적인 정비에 앞서 네덜란드 해군 정비창에 직원 20명을 보내 체계 전반에 대한 원천 기술을 배웠다. 지난해 9월 이 기술로 정비한 첫 장비는 바다에서 해군이 주관한 성능 시험을 통과했다.

대형 근접전계 시험장에서 레이다 성능 시험을 하고 있다. [영상캡처 김은지]

대형 근접전계 시험장에서 레이다 성능 시험을 하고 있다. [영상캡처 김은지]

창정비 현장에 도착하니 새제품처럼 깨끗해진 골키퍼가 마지막 점검을 받고 있었다. 모든 부품 하나하나를 분해하고 정비하고 일부 부품은 새것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구석구석까지 잘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런 경험 덕분에 한국형 CIWS-II 개발이 어렵지 않다는 평가다. 홍성표 LIG넥스원 CIWS-II 사업단장은 “CIWS-II에 탑재될 함포는 골키퍼와 동일하여 이미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면서 “AESA 레이더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전력화했고, 센서 분야에서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레이더 탐지 등 국내 개발 기술 확보

LIG넥스원 직원이 함대함유도탄 해성을 조립하고 있다. [영상캡처 강대석]

LIG넥스원 직원이 함대함유도탄 해성을 조립하고 있다. [영상캡처 강대석]

이날 대형 근접전계 시험장과 국내 최대 규모 레이더 종합 시험장에선 성능 시험 중인 대포병탐지레이더-IIㆍ울산-I급 함정 탐색 레이더ㆍ국지방공레이더를 살펴볼 수 있었다.

LIG넥스원은 해궁을 비롯해 함대함유도탄 ‘해성’ 휴대용대공유도탄 ‘신궁’ 등 다양한 유도 무기도 생산한다. 잘 보고 잘 쏘며 막아내는 모든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정비 중인 ‘함정 대공표적 레이다(STIR-240)'는 함정에 근접하는 항공기 비행 정보를 파악한다. [영상캡쳐 김은지]

정비 중인 ‘함정 대공표적 레이다(STIR-240)'는 함정에 근접하는 항공기 비행 정보를 파악한다. [영상캡쳐 김은지]

우연히 특별한 레이더를 발견했다. 2019년 일본초계기 근접 위협 비행 당시 한국 해군 함정에 장착됐던 장비다. 함정에 근접하는 항공기 비행 정보를 파악하는 ‘함정 대공표적 레이더(STIR-240)’인데 정비를 받기 위해 들어온 거다.

유도탄 조립 현장에 들어가 보니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방위산업 현장 근무자의 애국심이 느껴졌다. 업체 관계자는 “출근할 때 일하러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애국하러 회사 간다고 말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무기를 만들고, 다시 고쳐 더 강한 힘으로 나라를 지키는 현장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구미 생산본부 본관 옥상에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인다. 현관 앞에는 한국전쟁 참전국 국기도 모두 걸려 있었다.

구미=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영상=강대석·김은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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