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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한줌에 매미나방 1만마리…온난화에 소백산은 '벌레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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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한 매미나방 알집. 알집 하나에 약 400~500개의 알이 들어있다. 최경헌 인턴

제거한 매미나방 알집. 알집 하나에 약 400~500개의 알이 들어있다. 최경헌 인턴

지난달 18일 충북 단양군의 소백산 자락. 길게 뻗은 나무 한 그루가 누런색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곰팡이처럼 생긴 보이는 이것의 정체는 매미나방의 알집이다. 포근한 봄기운을 받은 알들이 대규모 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애니띵]매미나방 퇴치 작전

지난해 서울과 충청북도 일대를 휩쓴 곤충의 습격이 재발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시 매미나방 수만 마리가 마을과 도심을 덮쳐 주민들이 피해를 봤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올 봄도 평소보다 따뜻해 지난달 31일 매미나방의 부화가 처음 관찰됐다. 예년보다 일주일쯤 빠른 속도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숲 속 점령한 매미나방 알집…나무마다 빼곡

지난달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의 한 나무 아래에 매미나방 알집이 붙어있다. 왕준열 PD

지난달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의 한 나무 아래에 매미나방 알집이 붙어있다. 왕준열 PD

기자는 지난달 국립생태원·국립공원공단 직원 35명과 함께 매미나방 알집을 제거하기 위해 소백산을 찾았다. 소백산은 지난해 충북 제천·단양 등을 휩쓴 매미나방의 발원지다. 직원들과 함께 안면 보호구를 쓰고 키를 훌쩍 넘기는 장대를 들고 산에 올랐다. 올해에만 벌써 세번째 이뤄지는 제거 작업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자 누런 털 뭉치처럼 생긴 매미나방의 알집에 뒤덮인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굵은 나무기둥부터 가지 끄트머리까지 알집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지난 3월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서 국립생태원 직원들과 기자가 나무 아래에 붙어있는 매미나방 알집을 떼어내고 있다. 왕준열 PD

지난 3월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서 국립생태원 직원들과 기자가 나무 아래에 붙어있는 매미나방 알집을 떼어내고 있다. 왕준열 PD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의 알집에는 매미나방의 알 300~400개가 들어있다. 한 줌 정도의 알집에서 1만 마리가 넘는 매미나방이 부화할 수 있는 셈이다.

양 손으로 말아쥔 장대로 나무를 긁자 알집이 뿌연 먼지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나무에서 떨어진 매미나방 알은 먹이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금세 고사한다. 4월쯤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되면 이동능력이 생겨 방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미리 알집을 제거해야 개체 수를 줄일 수 있다.

제거한 매미나방 알집. 알집 사이사이에 매미나방 알이 박혀있다. 왕준열 PD

제거한 매미나방 알집. 알집 사이사이에 매미나방 알이 박혀있다. 왕준열 PD

독성을 띈 매미나방의 알집이 피부에 닿자 간지러운 느낌이 올라왔다. 긴 막대를 몇 분대 휘두르자 금방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정길상 국립생태원 기후생태연구실장은 "농약을 뿌리면 매미나방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이 제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년 만에 가장 빠른 벚꽃 개화…대발생 또 오나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에서 한 시민이 반팔을 입고 있다.   큰 일교차를 보인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23도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에서 한 시민이 반팔을 입고 있다. 큰 일교차를 보인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23도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올해도 전국에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지난해와 같은 곤충 대발생 사태가 빚어질 거란 우려가 크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강원 춘천시와 충남 서산시 등은 3월 낮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서울에서 벚꽃 개화가 확인됐다. 1922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빨랐다.

최근 곤충 대발생이 빈발하는 이유는 온난화로 한반도의 기온이 점차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00년까지 30년간 한국의 평균기온은 12.3도였다. 이에 비해 1991년부터 측정한 30년 평균기온은 0.5도 오른 12.8도를 기록했다. 2010년대 십년 간의 평균 기온은 1980년대보다 0.9℃ 상승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 핀 홍매화꽃 너머로 서울 도심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 핀 홍매화꽃 너머로 서울 도심이 보이고 있다. 뉴스1

기온 상승은 계절의 길이에도 영향 미쳤다. 2010년대에 봄·여름은 1980년대보다 각각 3일·14일 길어졌다. 반면 가을과 겨울은 각각 2일·15일씩 줄었다. 겨울이 짧아지면서 동절기에 동사하는 알이 줄고, 자연스럽게 여름철 대발생으로 이어진다.

"기후 변화 늦추고 생태계 다양성 회복해야"

지난 3월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서 국립생태원 직원과 기자가 콘크리트 다리 아래에 붙어있는 매미나방 알집을 떼어내고 있다. 왕준열 PD

지난 3월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서 국립생태원 직원과 기자가 콘크리트 다리 아래에 붙어있는 매미나방 알집을 떼어내고 있다. 왕준열 PD

생태계 다양성 감소도 곤충 대발생의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생물의 수가 많아지면, 이를 잡아먹고 번식하는 천적도 증가하면서 생태계는 균형을 찾는다. 하지만 서식지 감소와 농약 등 화학약품 사용이 늘면서 천적 역할을 할 동·식물의 수가 줄고 있다.

이날 찾은 매미나방 알집 중 일부는 기생벌에게 공격당해 텅 비어 있었다. 기생벌은 매미나방 알집 등에 자신의 유충을 낳는다. 기생벌 유충은 매미나방 알을 잡아먹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대발생 가능성을 줄여 준다.

지난 3월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의 한 콘크리트 다리 아래서 찾은 매미나방 알집. 기생벌의 공격을 받아 점점이 구멍이 뚫려있다. 왕준열 PD

지난 3월 18일 충북 단양군 소백산의 한 콘크리트 다리 아래서 찾은 매미나방 알집. 기생벌의 공격을 받아 점점이 구멍이 뚫려있다. 왕준열 PD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의 속도를 낮추고, 생태계 다양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길상 실장은 "기후 변화가 계속되면 곤충 대발생 같은 일은 매년 반복된다. 방제를 통해 해충의 수를 줄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기생벌의 사례처럼 다양한 천적이 나타나도록 생태계 다양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영상=왕준열PD·최경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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