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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이름 ‘단풍나무 섬’…‘일본 색’ 이름 바꾸는 마을들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안산시 풍도. 단풍나무가 많아 풍(楓)자를 사용했으나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식 이름인 ‘풍성할 풍(豊)’으로 표기가 됐다. 안산시는 최근 풍도(楓島)’로 다시 지명을 바꿨다. 안산시

경기도 안산시 풍도. 단풍나무가 많아 풍(楓)자를 사용했으나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식 이름인 ‘풍성할 풍(豊)’으로 표기가 됐다. 안산시는 최근 풍도(楓島)’로 다시 지명을 바꿨다. 안산시

#1.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에서 24㎞ 떨어진 섬 풍도. ‘단풍나무가 많다’고 해서 고려시대부터 단풍나무 풍(楓)자를 쓴 풍도(楓島)로 불렸다. 조선 시대 말까지 ‘단풍나무’ 풍도로 불렸던 이 섬은 청일전쟁(1894~1895년) 이후 한자가 바뀌었다. ‘풍성할 풍(豊)’을 쓰는 풍도(豊島)가 된 것이다. 전쟁의 시발점이 된 '풍도 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이 "섬 주변에 수산자원이 풍부하다"며 ‘풍도(豊島)’라고 불렀던 게 이유였다. ‘단풍나무의 섬’은 1895년 갑오개혁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도 풍도(豊島)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2. 경기도 과천 경마장 서쪽에 있는 '광창(光昌)' 마을은 원래 청계산 끝자락에 있어서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인다는 의미로 '넓은 창고'를 뜻하는 '광창(廣倉)'으로 불렸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지난 이후 한자가 광창(光昌)으로 바뀐 마을이 됐다고 한다. 과천시 관계자는 “마을 이름이 왜 광창(光昌)으로 바뀐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근본 없이 바뀌어 버린 원래의 지명의 제 이름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는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풍도의 원래 이름을 찾기로 하고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회에 지명 변경 고시를 건의했다. 최근 국가지명위원회가 최종 변경을 결정해 풍도(楓島)는 120여년 만에 원래 이름을 찾았다.

일본식으로 바뀐 이름 되돌리는 지자체들

과천시는 지난해 5월 지명위원회를 열고 광창(光昌)을 예전 이름인 '광창(廣倉)'으로 바꾸기로 했다. 현재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회에 건의된 상태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도내 398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명칭 변경 여부를 조사한 결과, 40%인 160곳이 당시 고유의 명칭을 잃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 지역을 통합하면서 두 동네의 지명에서 한 자씩 선택해 합친 '합성지명'이 121곳으로 가장 많았다. 식민 통치의 편리성을 위해 숫자나 방위, 위치 등을 사용해 변경한 사례도 29곳이나 됐다. 기존 지명을 아예 한자로 바꾼 경우도 있었다.

오산시는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지명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오산시 정체성 함양을 위한 지명 사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역 정체성을 찾는 지명 사용 확산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자치법규를 제정한 첫 사례다.

오산시는 지역에 있는 자연물·각종 시설물·문화재·행정구역 및 도로명 등을 지역 실정과 전통성·상징성·정체성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지명 변경 추진하는 지자체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 330여개 군을 220개 군으로 통합했다. 4322개 면은 2518개로 줄이면서 이름이 바뀐 곳이 많아졌다.

인천 미추홀구는 2018년 일본이 방위 개념으로 붙였던 '남구'라는 이름을 버리고 옛 지명인 '미추홀구'로 개정했다. 경북 포항시는 일본식 명칭인 '장기갑'을 '호미곶'으로 바로 잡았다.

인천 미추홀구는 2018년 7월 기존 방위 개념이던 '남구'라는 지명을 '미추홀구'로 바꿨다. 미추홀구

인천 미추홀구는 2018년 7월 기존 방위 개념이던 '남구'라는 지명을 '미추홀구'로 바꿨다. 미추홀구

강원 홍천군은 '동면'을 오는 6월부터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온다'는 뜻의 옛 이름인 '영귀미면(詠歸美面)으로 변경한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은 이달부터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대왕에서 딴 '문무대왕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문무대왕면에는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 등이 있다.

전북 진안군은 진안읍 군하리 우화산 서쪽에 있는 성묘산(聖墓山)의 이름을 성뫼산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성묘산은 원래 산의 옛말인 '뫼'를 써 성뫼산으로 불렸는데 일제가 지도를 만들면서 성묘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경남 김해시는 진영읍 죽곡리에 있는 소류지(沼溜地·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만든 작은 저수시설) '외촌(外村)'을 '밤나무가 많다'는 뜻의 옛 지명 율리(栗里)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굳이 바꿀 필요 있나?' 반발도 

하지만, 일각에선 익숙한 명칭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무산되거나 주민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인천 동구는 미추홀구와 함께 지명 변경을 추진했지만, 찬반으로 나뉜 주민 갈등으로 계획을 접었다. 2018년부터 지명 변경을 추진한 부산 북구는 주민들을 상대로 찬반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지명 변경에 따른 표지판 교체 등에 드는 예산도 만만치 않아 일부 지자체는 아예 계획을 접었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방위식 지명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지명 변경 사업 추진으로 드는 예산도 부담되고 '왜 바꾸냐'는 주민 의견도 있어서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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