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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왜 국민을 ‘스틱스’ 늪에 던져 넣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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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 슬픈 계류는 스틱스라는 늪으로 간다/ 진흙 범벅이 된 죄인들, 벌거벗고 성난 얼굴/ 이빨로 조각조각 살을 물어뜯고, 온몸으로 서로를 때리며 싸운다/“아들아 분노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보아라”/ 물 아래 있는 영혼들이 내쉬는 한숨은/물의 표면을 부글부글 끓게 한다/ 진흙투성이 사람들이 말한다/“달콤한 공기와 밝은 햇살 속에서도 분노의 연기를 우리 안에 두고 슬퍼했네. 지금은 이 검은 진흙탕에서 더 슬퍼하네. 이 말들은 목 안에서만 그렁그렁 맴돌 뿐, 온전히 말할 수 없는 처지라네”

국민 분노를 기회로 추동하는 정치 #왜 분노하는지 이유엔 관심도 없고 #괴로움 풀어줄 해결책 제시 못 해 #국민들은 더 이상 선동당하지 말자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선 다섯째 고리, 분노한 자들의 지옥을 이렇게 묘사한다. 분노의 죄를 지은 자들의 영혼은, 그 이름도 끈적한 ‘스틱스’라는 늪에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검은 진흙 때문에 슬픔조차 표현할 수 없다. 분노(anger)와 괴로움(anguish)은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다. 이빨로 자기 살을 조각조각 물어뜯고, 온몸으로 서로 치고받는 괴로움. 괴로워서 분노하고, 분노해서 괴롭다.

괴롭고 분노한 사람은 파괴적이 된다. 파괴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있다. 살인과 폭력, 원한 같은 죄와 악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인간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불합리한 기존 질서를 뒤엎는 혁명과 분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파괴를 추동하는 에너지원이 바로 분노다. 이 같은 분노의 이중성으로 인해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자 하는 선동가들은 대중의 분노를 펌프질하며, 이를 이용하려고 든다.

분노의 정국. 지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지상 스틱스의 늪이다. 대통령부터 보궐선거판까지 온통 국민의 분노를 추동한다. “국민의 분노를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주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의에 찬 발언이다. 한데 왜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에 국민의 분노를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

부동산 때문에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맞다. 한데 LH 투기 사태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세금 인상 같은 것은 국민의 집으로 인한 괴로움의 임계점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었을 뿐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정권이 가진 ‘인간에 대한 몰이해’인지도 모른다.

선데이칼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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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집이란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다. 집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크든 작든 말이다. 집이 두 채 있다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안전망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지나친 쏠림과 불공평이다. 사실 우리나라 부동산의 절반 이상은 기업들이 가지고 있다.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기업인들도 꽤 된다. 집 가진 사람 중 주택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비중이 클까.

그런데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애당초 집 있는 사람을 적대시하고, 큰 집 가진 사람과 강남 사람들을 응징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는 보유세에 적극 찬성한다. 그리고 내가 낸 세금이 주거 불공정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 한데 가혹한 세금은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다. 벌금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괴롭고, 힘들게 한다. 한데 문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를 징벌적이라 할 만큼 지나치게 올렸다. 아마도 적대감과 응징의 의지에서 발원한 정책이어서 그럴 거다.

김상조 전 정책실장. 그는 우리나라 공정거래와 투명한 경제 질서 확립에 헌신한 인물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자기 집 전세금을 올려받은 일로 물러났다. 한데 이 일의 흐름은 사람들이 갖는 자기 집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와 맞닿아 있다. ‘내 전세비를 올려줘야 하니 내 집 전세비도 올려받겠다’는 욕망이 자기 자리를 망각케 했다는 것이다. 물론 위선적인 면도 있지만, 이는 평생 공정 경제를 외쳐온 그조차도 이런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사람이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타인의 탈선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이 고단하고 괴로워서다.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내 기본적 욕구가 나쁜 짓이라고 지탄받을 때,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집 있는 사람은 있어서, 없는 사람은 없어서 모두 괴로웠던 요 몇 년의 괴로움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온 것이 작금의 분노인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정말 기막힌 광경도 펼쳐지고 있다. 보궐선거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2030 세대 분노 추동질’이다. 야당 유세에서 분노한 청년이 했던 연설이 호응을 얻자 국민의 힘은 ‘유세하고 싶은 분노한 2030들은 연락 달라’며 아예 분노를 모집했다. 정치인이라면 젊은이들의 그 원천적 괴로움을 추스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분노만 부추기고 이용하려는 얄팍함이 선거전략이어선 안 된다는 거다. 개념 없는 현실 인식 수준의 여당 후보, 대중 분노에 무임승차하려는 야당 후보…. 이 시대 유권자인 내 처지가 슬프다.

신경정신과 전문가들은 분노는 전염되고, 할수록 증폭되며, 중독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게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괴로움을 더 키운단다. 분노를 추동질하는 자들이 내 괴로움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끈적한 검은 진흙은 모두 내 몫이다. 이젠 국민이 마음을 다스리고 냉정하고 지독하게 평가하고 감시하는 주인의식을 갖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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