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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세운 ‘마자르족’ 조상은 부여계 기마민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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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26면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끝〉

아르파드의 지휘 아래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헝가리 기록화. 기병대는 부여·고구려·말갈족처럼 새 깃털을 꽂은 관(鳥羽冠)을 쓰고, 일반 백성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위키피디아]

아르파드의 지휘 아래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헝가리 기록화. 기병대는 부여·고구려·말갈족처럼 새 깃털을 꽂은 관(鳥羽冠)을 쓰고, 일반 백성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위키피디아]

현대 헝가리의 직접 조상은 멀리 동방에서 출발하여 AD 895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에 영구히 정착해서 헝가리 왕국을 세운 고조선·부여 후예 ‘마자르’(Magyars)족이었다.

고중국과 국경 지키던 민족 ‘불도하’ #형제관계 훈족 따라 서방으로 이동 #895년 판노니아 평원에 왕국 건립 #부여족처럼 단군·태양·불·달 숭배 #가옥·복식·5음계·장수 모자도 비슷

고조선과 고중국의 국경이 지금의 베이징 부근 영정하(永定河)와 간하(干河) 일대였을 때, 고조선의 간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산융(훈족)과 ‘불도하’였고, 영정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불리지’와 ‘고죽’이었다. 산융은 매우 강대한 데 비하여 불도하는 강소했기 때문에, 불도하는 지금의 탁록(涿鹿)현에 맞닿은 간하 동쪽만 지키고, 광활한 서쪽은 산융이 지키면서 형제처럼 잘 협동하고 있었다.

헝가리 교과서에 개국 설화 실려

마자르 전통 흰옷과 붉은 댕기를 단 소녀들의 민속춤. 강강술래를 닮았다. [위키피디아]

마자르 전통 흰옷과 붉은 댕기를 단 소녀들의 민속춤. 강강술래를 닮았다. [위키피디아]

불도하는 머리 명칭 ‘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부여족 일파였다. 부여는 처음 ‘예’족이 건국했다가 후기에 왕조가 ‘맥’족으로 교체되어, ‘예맥족’ 국가가 되었다. 고조선은 용감한 예족 기병부대를 훈족(산융)에 붙여서 서변 요충지 간하 방어에 배치했었다. BC 108년 고조선 해체 후 불도하는 농경민만 남고 유목 기마부대족은 훈족을 따라 이동하다가 결국 중앙아시아에 들어갔다.

현재 헝가리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마자르족의 개국 설화에는 한 나라 임금에게 두 아들 훈오르(Hunor)와 마고르(Magor)가 있었는데, 사냥 나갔다가 불가사의한 수사슴을 만나 뒤쫓았더니 두 사냥꾼을 깊은 숲속으로 유인하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실망한 두 사냥꾼에게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둘’(Dul) 왕의 아름다운 두 딸이 호수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다. 두 아들은 두 공주를 각각 말에 태우고 돌아와서 혼인하여 아내로 삼으니, 훈오르가 낳은 자손이 훈족(Huns)이 되고, 마고르가 낳은 자손이 마자르족(Magyars)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설화는 훈족과 마자르족이 국왕을 같이한 형제 관계이며, 훈족이 형이고 마자르족이 아우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훈오르’는 ‘훈+오르’로, ‘마고르’는 ‘마ㄱ+오르’로 분절된다. 이어 ‘마가르’가 ‘마자르’로 변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여는 대장군이나 장관을 ‘가’(ga, gar)로 호칭하고, 말·소·양·개 등의 가축 이름을 붙였는데, ‘말가(르)’가 ‘마자르’로 변음된 것으로 해석된다. 마자르족 개국설화는 고조선 시기 훈족과 불도하의 형제 관계와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본다. 이 설화는  동일 국왕 아래서 살다가 이동하여 각각 훈족과 마자르족을 형성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불도하의 족장 말가(르) 지휘 하의 기마부대족은 2~4세기경 훈족의 뒤를 따라 우랄산맥의 동쪽 토볼강 유역에 정착했다. 이 시기부터 부족 이름이 마자르(마가르)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훈족이 4세기에 더 서방으로 이동하여 판노니아 평원으로 들어가자, 마자르족은 우랄산맥 서쪽 카마강과 볼가강 사이의 이전 훈족의 첫 정착지 자리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마자르족은 목축과 농경에 힘쓰며 상당히 성장하여, 헝가리 학자들이 ‘대(大)헝가리아’(Magna Hungaria)로 호칭하는 시기를 맞았다. 그러다 마자르족은 5~7세기 돈(Don)강과 드니에프르(Dniepre)강 하류 사이의 레베디아 지방으로 이동했다가 강대한 불가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헝가리 왕국을 건국한 마자르족장 아르파드 동상. 부다페스트 광장. [위키피디아]

헝가리 왕국을 건국한 마자르족장 아르파드 동상. 부다페스트 광장. [위키피디아]

마자르족은 7세기 말~8세기 전기에 막강한 힘을 배양했다. 그 요인이 동방으로부터 찾아온 유목민의 충원을 받은 것이라면, 필자는 그것을 속말말갈(粟末靺鞨)족으로 본다. 원래 말갈족의 본거지는 부여의 통치 아래서 요동지방 동만주에 분포된 7개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고구려 건국 후 영토 확장 과정에서 ‘제2 송화강’ 부근의 ‘속말말갈’이 영토를 지키려고 581~600년 고구려와 전쟁에서 패했다. 대부분 고구려에 항복해 고구려 신민이 되었으나, 궐계부(厥稽部)의 ‘만돌’과 그의 동생 ‘돌지계’는 항복을 거부하고 수나라로 피신했다. 수나라는 이들을 요서의 대릉하 부근에 두었는데, 동생 ‘돌지계’는 수나라의 신하가 되었고, 형 ‘만돌’과 그 기마부대는 탈출하여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요서 지방으로 이동한 유일한 말갈족 기병부대이다(『隋書』, 『太平寰宇記』, 『北史』). 이들이 중앙아시아의 동일 예족인 마자르족을 찾아가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자르족은 8~9세기에 드니에프르 강과 드니에스테르(Dnyester)강 사이의 흑해 위 서편 카자르 제국 영토인 에텔쾌즈(Etelkoez) 지방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해 정착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카자르 제국은 마자르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889년 마자르족을 공격했다.

말갈족 기병부대 합류한 뒤 강성

마자르족은 다시 895~900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 안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했다. 이곳은 동로마의 영지였으나 로마인은 많지 않았고 약 20만 명의 슬라브족이 살고 있었다.

마자르족은 이 민족이동 때 7개 기마 부족장이 모여 혈맹의 뜻으로 피를 나누어 마시고 아르파드(Arpad)를 왕으로 지명함과 동시에 그의 남자 후손을 세습 군주로 봉대할 것을 서약했다.

아르파드가 지휘하는 약 2만 명의 정예 기병부대는 895년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분지 안으로 진입해서 슬라브 농민들을 신속하게 정복했다. 아르파드는 뒤따라온 약 40만 명의 마자르족을 정착시키고, 마침내 카르파티아 분지에 마자르족의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것이 현대 헝가리 마자르족 국가의 시작이다.

말, 투룰(Turul·신성한 새) 등을 새긴 마자르족의 토템 장식(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말, 투룰(Turul·신성한 새) 등을 새긴 마자르족의 토템 장식(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마자르족의 동방 기원 이해를 위해 부여족·말갈족·고구려족과 흡사한 몇 가지 전통 민속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① 부여 왕족 토템은 ‘사슴’이고, 주민 토템은 ‘새’였다. 마자르족 건국 설화에 사슴과 투룰(Turul, 독수리)이라는 새가 나오는데, 연관성이 현저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말이 애호되었다.

② 마자르족의 반수혈(半竪穴) 가옥은 부여의 수혈 주거와 매우 유사하다.

③ 마자르족 주민의 7부족(Hétmagyar) 구성은 부여의 ‘예’계 말갈족의 7개 부족 구성과 같다.

④ 마자르족의 남·녀 복식과 고깔모자는 부여족의 복식과 고깔모자와 매우 유사하다.

⑤ 형이 사망하면 아우가 형수를 취하는 마자르족의 제도는 구려·고구려와 동일하다.

⑥ 마자르족의 민족음악 5음계는, 부여족 등 고조선 후예들의 민족음악 5음계와 동일하다.

⑦ 마자르족 언어는 아발족(우구르족) 언어와 가까운 친족 관계이다. 이것은 고조선 언어가 부여·아발어·말갈어·마자르어의 조어(祖語)이기 때문이다.

⑧ 마자르족의 장수들과 아르파드 족장의 군모에 새 깃털〔鳥羽〕을 꽂는 양식은 부여·고구려의 깃털 모자와 동일하다.

⑨ 마자르족의 전통 종교는 텡그리즘(Tengrism)으로 단군 신앙이다.

⑩ 마자르족의 신앙에 단군과 함께 태양과 불〔火〕에 이어 달을 숭배하는 전통은 부여족의 태양·달·불 숭배와 동일하다.

※고조선 문명의 후예들이 유럽에 들어가서 수행한 활동을 되돌아본 이 연재를 이번 회로 종료합니다. 인류의 편견 없는 소통과 교류를 위한 연구와 토론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 교수(1965~2003) 정년퇴임. 한양대·이화여대·울산대 석좌교수(2003~2018) 역임. 저서 『독립협회 연구』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사회사』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 『고조선 문명의 사회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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