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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다른 사람 신장이식 발전, 생존율 확 높아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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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28면

라이프 클리닉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이 늘면서 말기 신부전의 발생 빈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말기 신부전은 콩팥(신장)의 기능이 소실돼 콩팥의 역할을 대신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을 의미한다. 심혈관 질환 등의 중증 합병증 동반이 빈번해 사람의 생명을 크게 위협할 수 있는 질환이다. 대한신장학회가 발간하는 ‘2020 우리나라 신(腎)대체요법의 현황’에 따르면 말기 신부전 신규 환자 수는 2019년 1만8642명이었고, 인구 100만명당 발생자 수는 300명을 초과해 전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 희망 #항체 제거 치료로 거부반응 최소화 #혈액형 일치 이식과 큰 차이 없어 #전체 수술의 30%, 공여자 부족 해결 #다양한 감염성 합병증 예방 숙제

말기 신부전 환자는 투석 혹은 신장이식 같은 신장의 역할을 대신해 줄 신대체요법(혈액투석·복막투석·신장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신장 이식은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공여자가 부족해 많은 환자가 신장이식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9년 기준 뇌사자로부터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등록한 대기자 수는 2만4786명에 이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공여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한 가지가 혈액형이 서로 맞지 않는 공여자와 수혜자 간의 이식, 즉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을 통한 생체 공여자 확대다.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의 역사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때는 ‘항 ABO 항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항체 제거 치료 없이 신장이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식 후 1주 이내에 ‘항 ABO 항체에 의한 초 급성 거부반응’이 발생해 이식한 신장의 기능 소실을 초래했다. 1985년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 처치 요법과 유사한 방법을 이용한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이 처음 시도됐다. 그러나 이식 신장의 1년 생존율(이식 신장이 1년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비율)은 80%에 머물러 혈액형 일치 이식과 비교해 열등한 임상 경과를 보였다. 1990년대 이후, 일본·미국·스웨덴의 주요 이식 센터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2007년 메리놀 병원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이후 매년 이식 건수가 증가했다. 국립 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시행된 생체 신장이식 1499례 중 30%에 이르는 440례의 이식이 혈액형 불일치 이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과거 혈액형이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어 이식을 받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이식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이식 전에 항 ABO 항체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필수다. 혈액형이 서로 다른 사람 간에 수혈이 이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항 ABO 항체가 적혈구 표면의 ABO 항원과 반응해 적혈구를 파괴하는 용혈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항 ABO 항체가 이식받은 콩팥의 혈관 내피세포와 세뇨관 세포 표면에서 ABO 항원과 반응해 이식받은 콩팥을 공격해 손상하는 항체 매개성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 시행 전에 항 ABO 항체를 측정한 후 이식이 가능한 수준까지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 절차다. 항체를 제거하기 위한 전 처치 요법은 혈액 중 이미 존재하는 항체를 제거하는 혈장 반출술(Plasmapheresis)과 항체생산 면역세포의 효과적인 파괴를 통해 추후 항체의 생산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리툭시맙(rituximab)이라는 약제를 투여하는 방법이 근간을 이룬다.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의 성적은 이식 후 이식 신장의 수명을 관찰해 얻는다. 이식받은 신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해 다시 투석이나 재이식이 필요하지 않은 기간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초기 성적은 혈액형 일치 이식에 미치지 못했으나 약제와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나날이 향상돼 현재는 혈액형 일치 이식과 비교해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2009년 5월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을 처음 시행했고, 2020년 11월까지 300례를 시행했다. 이식 신장 생존율은 1년, 3년, 5년 생존율이 100례 기준 각각 95.9%, 91.8%, 86.5%, 101~200례 기준 97.2%, 91.4%, 86.4%로 높은 생존율을 보였고, 200례 이후의 이식 신장 1년 생존율은 100%, 5년 생존율은 92%를 기록하고 있다.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은 혈액형 일치 신장이식과 비교해 임상경과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하지만 혈액형 불일치 이식이 시도되기 시작한 지 몇십년이 채 되지 않아 장기간의 연구 결과가 미미한 실정이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분야가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로 항 ABO 항체의 역가 측정 방법이 표준화되지 않았고, 이식 전 항체가 높게 존재하는 환자들은 효과적인 항체 제거가 어려워 성공적인 이식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둘째로는 항체를 제거하기 위해 시행하는 전 처치 치료가 환자의 면역반응을 줄여 이식 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감염성 합병증의 빈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는 특히 면역력이 약한 고령의 환자에게 두드러져 합병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 치료법이 보다 명확하게 정립돼 이식 신장의 예후를 보다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정병하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
2001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내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이며, 신장이식·신장질환이 전문분야다. 2017~2019년 시애틀 워싱턴대학교에서 ‘줄기세포와 콩팥 오가노이드’를 주제로 연수했다. 대한신장학회 부총무이사, 대한이식학회 일반이사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대한신장학회 젊은 연구자상, 2019년 대한내과학회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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