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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NFT, 복제되고 돈세탁에 쓰일 우려 씻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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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14면

NFT로 자금을 조달한 그라임스의 작품 ‘신들의 조각’. [사진 니프티게이트웨이]

NFT로 자금을 조달한 그라임스의 작품 ‘신들의 조각’. [사진 니프티게이트웨이]

15~18세기 유럽과 남아메리카 일대에서는 스페인 달러를 ‘피스 오브 에이트(Piece of eight)’라고 불렀다. 스페인 제국은 남미에서 확보한 은으로 은화를 주조했는데, 이를 8조각으로 쪼개 거스름돈을 주고받을 때 사용했다. 특히 쪼개진 동전을 서로 맞춰 신원을 증명하는 용도로도 썼다. 무작위로 자른 8조각은 각기 고유의 모양이 있어 위·변조가 불가능했고, 모든 조각을 모아야 가치가 형성돼서다.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해적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요즘 유행인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Non Fungible Tokens)’의 개념이 이미 500년 전부터 통용된 셈이다.

위·변조 불가능한 ‘정품 인증서’ #디지털 그림 68억에 팔려 눈길 #증명·거래·권한 등서 한계점 많아 #OECD, 규제 대상에 포함 움직임 #증권화 등 제도화 작업 선행돼야

최근 미술품의 가치를 디지털로 저장하고 온라인 영역의 소유권을 인증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 받고 있다. ‘NFT’로 불리는 이 기술은 미술품의 가치와 다수 구매자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디지털·암호화 자산으로 만든다. 거래 이력이 자동으로 저장되고, 위·변조가 불가능한 일종의 ‘디지털 소유권 증명서’이자 ‘디지털 정품 인증서’다. 예컨대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지만, 로댕이 최초로 만든 조각상만의 가치를 디지털로 담아 분산해 보유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부인이자 캐나다 가수인 그라임스가 올 초 자신의 디지털 그림과 영상을 온라인 경매에 올려 20분 만에 600만 달러(약 68억원)를 벌었다. 잭 도시 트위터 공동 창업자가 2006년 트위터에 처음 작성한 ‘just setting up my twttr(방금 내 트위터 설정함)’ 트윗은 경매에서 291만 달러(약 33억원)에 낙찰됐다. 이렇게 화제를 모으자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NFT 프로젝트 시세는 연초 대비 10~20배가량 급등하기도 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실물·디지털 자산을 암호화폐화하는 작업은 NFT가 처음은 아니다. 암호화폐는 등장 초기부터 실물 자산 소유의 증명 수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능과 역할에 의구심을 받아왔다. 그러자 기업 주식이나 자산유동화증권(ABS)처럼 실물을 디지털 자산으로 유동화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에 따라 토큰 보유자가 주식처럼 배당이나 이자·의결권·지분 등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한 증권형토큰공개(STO·Security Token Offering)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다만 STO로 자산을 증권화하려면 증권신고서·투자설명서 등으로 법적인 성격을 인정받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후 증권화하지 않는 자산에 디지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NFT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술품·게임 아이템처럼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지만, 재화로써 가치를 지닌 자산의 성격이 암호화폐인 NFT와 잘 맞아떨어졌다.

물론 NFT 역시 디지털 자산 가치의 평가와 증명·소유·거래·권한 측면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다. 디지털 자산이 서비스되는 플랫폼에서 삭제되거나 변경되는 경우 자산 가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예컨대 게임 아이템을 NFT로 디지털 자산화한 경우 게임 운영사가 해당 아이템의 성능을 떨어뜨리거나 상급 아이템을 발행하면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 특히 게임 아이템의 자산 가치를 1000명이 동등하게 나눠 보유했더라도 사용 가치는 단 한 명만이 누릴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의 경우 원본의 질적 손상 없이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는 점도 난제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동영상·움짤 등인 밈(Meme)으로 유명한 ‘니얀 캣(Nyan Cat)’의 동영상 이미지는 NFT로 자산화한 덕에 58만 달러(약 6억5000만원)에 팔렸는데, 이미 무수히 복제돼 온라인 공간에서 떠돌고 있다. 더구나 발행자가 니얀캣의 업데이트 버전을 내놓으면 원본의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도 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PFS (Interplanetary File System)와 같은 NFT를 영구적 분산형 서버에 저장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산 가치를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 미국의 경영 전문 로펌 데이비스라이트트레마인은 보고서에서 “NFT가 예술품의 라이선스나 정품 인증 기능을 발휘할지는 불분명하며, 작가가 디지털 아트의 진위를 결정한 권한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물자산을 NFT로 만든 경우에는 토큰이 자산의 소유를 증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마이클 조던의 NBA 카드를 NFT로 구매한 경우 카드는 어딘가 오프라인 공간 존재하며, 이 카드의 전시 등으로 발생한 수익을 주장한 권리를 얻지 못한다. NFT를 구매하면 토큰에 연결된 자산이 아닌, 토큰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산에 대한 권리·의무가 이전하는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또 NFT는 특정 자산 전체를 토큰화하지만, 마이클 조던 카드의 일련번호나 ‘champion’ ‘23’과 같은 상징적 부분의 배타적 가치를 반영하기 어렵다. 최화준 전 팀위 이사는 "바하마에서 침몰한 보물선 발굴 프로젝트를 NFT로 진행을 검토한 바 있다”며 “도박성이 있고 소유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어 보물선 각각에 별도의 NFT를 발행하고 정부가 실물로의 자산가치를 보증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소개했다.

NFT가 자금세탁 용도로 쓰일 여지가 크며, 이에 대한 규제 가능성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자금세탁금융대책기구(FATF)는 최근 보고서에서 가상자산의 정의를 ‘대체 가능한 자산’에서 ‘변환 및 상호 교환 가능한 자산’으로 대체하면서 NFT를 규제 대상에 포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FATF 규정은 회원국 금융당국이 준수해야 하는 의무다. 여현덕 조지메이슨대학교 석좌교수는 “NFT는 실물 자산의 소유권을 인증하는 수단은 아니다”라며 “가치 생산에 따른 배당 등을 받으려면 STO처럼 증권화 등 제도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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