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꾸고 죄도 짓는 AI, 인간은 어떻게?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03 00:20

업데이트 2021.04.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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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20면

인공지능(AI)이 인간 고유 영역을 위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이 그린 그림 옆에 선 AI 화가 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인간 고유 영역을 위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이 그린 그림 옆에 선 AI 화가 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뇌과학과 인공지능(AI)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입지는 좁아진다. 가령 연산과 추론 능력에서 AI가 인간을 이미 앞질렀다고 하지 않나. 바둑에서의 역전이 물증(物證)의 하나다. 그뿐일까.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의식이 있다고 해서 인간을 마냥 고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나. 그런 의식조차 인간의 두뇌 안에서 벌어지는 생화학 작용의 결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뇌과학 전문가들이 그런 주장을 편다.

노벨상 작가 새 소설 『클라라와 태양』
소녀 AI, 절대자에게 소원 빌어

변호사·작가 장편 『인간의 법정』
살인한 AI, 인간 변호사가 변호

이런 사태에 맞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소설을 읽는 것이 한 방편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 소설가들은(일반적으로 그렇다고 얘기된다) 사태를 면밀히 살피고 두텁게 자료조사를 한 다음 가까운 미래에 실제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을 미리 보여주니 말이다.

클라라

클라라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민음사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과 『인간의 법정』이 그런 소설들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란히 AI를 내세웠다. 하지만 AI 소재 소설이라는 점만 빼면 두 작품은 물과 불이 다른 것처럼 다르다. 작품의 초점이 다르고 굳이 얘기하자면 장르도 다르다. 『클라라』가 한 꺼풀씩 비밀이 벗겨지며 결정적인 장면을 향해 치닫는 정통 드라마에 가깝다면 『법정』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일종의 법정 스릴러다. 가파른 법정공방에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내친김에 작가 얘기도 해야겠다. 『클라라』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말하자면 이 분야의 달인이다. 소설 분야 말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공인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법정』의 작가 조광희씨는 본업이 변호사. 이번이 두 번째 소설이다. AI 범죄, 그러니까 AI가 저지른 범죄와 관련된, 휘발성 높은 논쟁점을 선취해 정교한 논리로 꿰맞춘 게 그의 무기다. 이렇다 보니 우리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모호한 감정, 그러니까 감동의 결이 두 작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잇따라 읽지 말기를 권한다. 뒤에 읽은 작품이 영향받는다. 읽는 순서를 바뀌어도 효과는 비슷하지 않을까.

나의20세기

나의20세기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민음사

조금만 깊게 들어가자. 2017년 이시구로를 선택한 스웨덴 한림원의 공로를 꼽으라면 장르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이시구로는 이른바 본격 문학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다. 1989년 출세작 『남아 있는 나날』(영화로 만들어졌다)이 정통 드라마라면, 2005년 작 『나를 보내지 마』(역시 영화)는 SF, 2015년 『파묻힌 거인』은 판타지, 이번 『클라라』는 다시 SF다. 기자가 읽은 한, 이시구로의 소설에는 묘한 슬픔 같은 게 어려 있다. 『클라라』도 그렇다. ‘클라라’는 물론 AI다. 근미래 미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10대 소녀 조시의 투병을 돕는 AF(Artificial Friend), 그러니까 인공지능 친구다.

그런데 클라라는 남들과 다르다. 다른 AF들과 다르다는 얘기다. 눈치 혹은 눈썰미가 100단이고, 그래서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사려 깊고 감정 지능이 빼어나다. 스포일러의 금기를 깨고 말한다면 클라라는 꿈과 희망도 품는다. 사람으로 치면 영감 같은 게 쏟아지는, 일종의 정신적 혼돈 상태에서, 절대자를 향해 조시의 회복을 기도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충격적인 압권 중 하나다. 이런 AF, AI를 단순한 기계 뭉치로 치부할 수 있을까. 소설이 묻고자 하는 점은 결국, 거창하지만, 우리는 어째서 인간인가, 이런 질문인 것 같다. 그런 질문이 딸 조시의 고통으로 고통받는 어머니 크리시의 다음과 같은 슬픈 절규에 집약돼 있다.

“내가 지금까지 널 보아 온 바로 그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전력을 다한다면 말이야. 될지도 몰라. 그러면 내가 널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312쪽)

클라라에게 한 말이다.

인간법정

인간법정

인간의 법정
조광희 지음

『법정』이 품은 질문은 AI 로봇이 형사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의식생성기를 삽입해 자아의식을 갖게 된 AI 아오가 주인이자 자신의 원본인 시로를 우발적으로 살해하자 인간 변호사 윤표가 변호에 나선다. 로봇의 법인격에 관한 특별법 같은 걸 동원하지만 막판 반전이 있다. 소설 제목 ‘인간의 법정’은 인간 법정의 한계를 암시한다.

출판사 민음사는 작은 판형의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을 함께 출간했다. 이시구로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이다. 이시구로를 깊게 읽으려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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