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한국정치 염치 없다, 독에 마비" 사회학계 원로 김경동 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2021.04.02 05:00

업데이트 2021.04.02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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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를 잘 꾸리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현 정부에는 그게 부족하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서울대 김경동(85)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 사회학계의 원로다. 1936년생인 김 교수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몸소 경험했다. 평생 사회학을 연구한 김 교수가 보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학술원 회원인 그에게 정치의 본뜻을 물었다.

정치의 근본이 뭔가.  
“한마디로 말하면 ‘안민(安民)’이다. 국민이 편안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나라다. 그게 정치의 근본이다.”
어떨 때 ‘안민’이 가능한가.
“유학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고 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수양해서, 도덕적으로 완숙한 위치에 있어야 치인이 가능해진다. 스스로 닦지도 않으면서 남을 다스릴 때 주로 나오는 말이 ‘내로남불’이다.”

김 교수는 ‘수기치인’에서 ‘치(治)’를 유독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치(治)’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다스릴 치(治). 다스린다는 뜻 아닌가.
“맞다. 그런데 어떤 다스림인가. 그게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치(治)’는 힘 있다고 법 만들어서 국민을 규제하는 다스림이 아니다. 강제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고 규제하는 걸 뜻하지 않는다. 예전에 선비들이 생각한 ‘치(治)’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안민’이란 의미였다. 그게 다스림의 본질적인 뜻이다. 요즘 행복 연구에서는 ‘행복’을 ‘주관적 안녕’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국민을 행복하게 하자는 게 정치의 목표다.”

이말 끝에 김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아주 불안하고 불행하다. 그들은 아직 집이 없는데 집값이 너무 무섭게 치솟았다. 그럼 정부가 어떡해야 하나. 시장 수요에 맞게끔 집을 공급해줘야 한다. 그걸 국가가 다 지으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사회주의나 할 일이다.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 아닌가. 그게 ‘안민의 정치’다.”

왜 지금은 ‘안민의 정치’가 안 된다고 보나.
“현 정부가 국가주의의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주택 문제 해결에 공공기관을 활용하겠다는 거다. 다시 말해 국가가 주도해서 집을 지어주겠다는 거다. 싼 집,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겠다. 듣기에는 좋다.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싱가포르처럼 인구가 적은 나라는 그게 용이할 수 있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공직자는 세계에서 가장 청렴하다. 우리나라는 조건이 다르다.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국가주의가 왜 위험한가.
“국가가 손대기 시작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공공 기업들 봐라. 가령 토지, 주택, 도로, 철도, 전력 등 공공사업을 공기관이 하고 있다. 공기업이 흑자를 내면서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숱하게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도 국민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 이유가 뭔가. 기본적으로 국가주의 발상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에만 전적으로 맡기면 결국 거대 자본이 독점하지 않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말했다.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효율이 생기고 결국 나라가 부흥한다. 그런데 『국부론』을 쓰기 전에 먼저 쓴 책이 있다. 다름 아닌 『도덕감정론』이다. 자본주의에서 경쟁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공감하면서 하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공감’에도 방점을 찍었다.”
어떤 공감인가.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가 시장경제에서 무조건 경쟁만 최우선시한 게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 결여된 게 바로 이것이다. 시장에서 경쟁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공감하라는, 바로 이 ‘타인 의식’이다. 이게 없는 게 ‘타인 의식 결핍증’이다.”  

김 교수는 “어쨌든 우리는 시장경제 체제를 운영하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맹점이 많다. 그렇지만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경제 체제다. 어떤 나라들은 사회주의도 해봤지만 먹고 사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자본주의는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지금까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나마 비교적 효율적인 방법이었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사회에서 돈벌이를 ‘적폐’로 간주하면 곤란하다. 물론 투기는 좋은 경제 행위는 아니다. 그렇지만 고위공직자는 집 하나 두고 나머지는 팔아라. 앞으로 집 두 채 가진 사람은 공직에서 배제하겠다. 그런 식의 경제 논리가 어디에 있나. 그럼 자본주의를 안 하겠다는 건가.”

김 교수는 “시장경제란 경쟁의 규칙을 바로 지키며 운용할 때 빛이 나는 제도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이 규칙을 무시하고 통제나 한다면 되겠나. 이게 국가주의의 병폐다”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치에 바탕한 합리성과 운영의 효율성, 그리고 청렴성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합리적인 법치도 안 되고, 시스템의 효율적 운영도 안 되고, 청렴성도 모자란다는 이야기다.”

청렴성이 모자란다고 했다. 왜 그런가.
“소위 운동권 민주화 세력은 이념에 빠져들어서, 도덕적 훈련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이런 도덕적 훈련은 체험에서 터득해야 가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효과를 얻는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다. 우리는 19세기에 시작한 근대화 과정에서 일제의 강점, 광복 후의 혼란기, 전쟁, 공업화와 급속한 경제성장,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 등 여러 고비를 넘기며 한 번도 몸에 배는 도덕적 훈련을 체험한 적이 없다. 특히 이데올로기에 한 번 빠져들면 시야가 좁아지고 만다. 나만 선하고, 내가 믿는 신념에 동조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적이 되는 독선에 빠지게 된다. 독선과 도덕적 훈련의 결핍. 그러니 ‘내로남불’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뭔가.
“정치에 염치가 없다는 거다.”
염치가 뭔가.  
“글자의 뜻을 보면 안다. 바르고 맑을 염(廉), 부끄러울 치(恥)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맑게 바르게 살아라, 혹시 네가 실수를 하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라. 이런 뜻이다. 또 남들이 맑게 살지 못하면, 부끄럽다고 이야기를 해줘라. 이런 의미도 담겨 있다.”

 김 교수는 작은 예를 하나 들었다. “서구 사회에서 길 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 어떡하나. ‘쏘리(Sorry)’ 혹은 ‘익스큐즈 미(Excuse me)’가 바로 나온다. 그런 게 염치다. 남에게 폐를 끼쳤으니 부끄러워하는 거다. 사과하는 거다. 이게 없으면 곤란하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이 더 심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타인 의식’의 결핍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염치가 너무 없다.”

염치가 없는 이유가 뭔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에는 독성이 있다. 그 독성에 마비돼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거다. 이런 현상은 비단 정치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드러난다. 이제부터라도 가정과 학교, 시민사회 등에서 이런 염치의 덕목을 몸소 배울 수 있는 체험 교육을 끊임없이 시도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학술원 뜰로 나왔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곳곳에 보였다. "한국 정치판에 염치가 없다"는 원로 학자의 지적에 봄마저 부끄러워할 지경이었다.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김경동 교수는
  1936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 코넬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장, 한국사회학회 회장, 한국정보사회학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저서로 『정치의 품격』『사회적 가치』『위기 속의 민주주의』, 사회비평시집 『시니시즘을 위하여』, 수필집 공저 『큰 나무 큰 그림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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