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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교육격차 줄일 AI 혁신 막는 전교조의 자가당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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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공교육 인공지능 활용 논란

경기도 성남시 하늘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31일 인공지능(AI) 교육 프로그램으로 공부하고 있다. 탈북 가정 자녀인 이곳 학생들은 학습력 차이가 커 맞춤형 공부가 필요하다. 김경록 기자

경기도 성남시 하늘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31일 인공지능(AI) 교육 프로그램으로 공부하고 있다. 탈북 가정 자녀인 이곳 학생들은 학습력 차이가 커 맞춤형 공부가 필요하다. 김경록 기자

어떤 부모도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게 너무 어려워 공부에 흥미를 잃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또 이미 아는 것만 배워 발전이 없는 경우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등산에 비유하면 초심자는 완만한 경사의 길을 오르며 산 타기의 기쁨을 느껴봐야 다시 산을 찾게 된다. 갑자기 암벽을 타라고 하면 산은 고통스러운 곳으로, 피해야 하는 곳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이미 등산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뒷동산 오르기만 시키는 것도 정상적인 등반 훈련이 아니다. 에너지 낭비다.

서울교육청의 AI 도입 계획에 #진보 정치권·교육단체가 반대 #취약계층 학생 돕는 혁신인데 #“학교에 사교육 업체 들이려나”

한 교실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학생들의 공부 실력은 제각기 다르다. 이상적인 교육은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습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선생님이 한 명이고, 수업 시간이 제한돼 있다. 그래서 통상 수업은 중간 수준에 맞춰 이뤄진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몹시 지루한 시간이 된다. 양쪽 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교실이 수면실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지 않다. 시험을 쳐 각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고, 이에 맞춰 개별적으로 교육하면 된다. 제대로 하려면 측정을 자주 해야 하고, 개별 또는 소규모 그룹의 수업이 필요하다. 이런 ‘맞춤형 교육’에는 큰돈이 들어간다. 당장 교사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 공교육 차원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해결 방법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가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이라는 게 탄생했다. 시험 문제를 만들고, 인쇄하고, 한 데 모여 시험을 치르게 하고, 채점을 하는, 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더 정확하기도 하다. 게다가 AI가 각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업 내용을 제시할 수도 있다. AI에 디지털 기기를 붙이면 개별적 수업도 가능하다. 이미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AI를 이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디지털 과외 선생님’을 두고 있는 가정이 많다. 학교만 진화를 거부한 채 고립돼 있다.

조희연 교육감

조희연 교육감

지난달 11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만났다. 그는 AI를 통한 학력 진단과 맞춤형 학습에 관해 얘기했다.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데 민간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고 싶어했다. 학습 취약층에라도 AI 기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기를 원했다. 교육격차 해소의 획기적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현실적인 제약이 좀 있다”고 말했다. 교육 관련 단체 등의 반대가 그 제약이다.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이 ‘인공지능 우수 민간 기업 관련 콘텐트 설명회’라는 행사를 열었다. ‘맞춤형 교육 및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민간 기업 우수 AI 프로그램 활용 방안 마련’이 취지였다. 당시 8개 업체가 참여했다. 한 달 뒤쯤 ‘진보 매체’라는 설명이 붙는 한 언론이 이 행사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8개 업체 중 3곳이 사교육 업체라는 것을 부각하며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격이라는 비판을 담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사교육 업체를 학교에 들이려는 게 아닌가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해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대표도 서울시교육청에 AI 활용 교육 계획 폐기를 요구했다.

조용상 대표

조용상 대표

이 설명회에 참여한 ‘아이스크림 에듀’의 조용상 대표를 만나 AI 활용 교육에 대해 물었다. 컴퓨터공학 박사인 조 대표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출신이다.

교육 분야 AI의 역할은 무엇인가.
“크게는 음성 인식, 얼굴과 감정 인식, 정·오답 예상 기능이다. 특히 교육에서의 핵심은 어떤 학생에게 어떤 문제를 제시했을 때 그 학생이 정답을 맞힐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다. AI가 수집된 정보들(빅데이터)을 통해 얻은 판단 기준에 따라 개별 학생의 수준을 측정한다. 현재 우리 회사의 수학 정·오답 예상 적중률은 85%가량인데 곧 90%가 넘을 것으로 기대한다.”
개별 학생이 무엇은 알고 무엇은 모른다는 것을 AI가 알아야 주어진 문제를 제대로 풀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 않나.
“중학생 수학의 경우 25개 문항 정도로 진단 시험을 치르게 하면 학생이 무엇을 아는지, 어디까지 아는지 판단이 가능하다. 초등학생들은 30분 정도 문제를 풀게 하면 평가가 된다.”
그런 AI를 정부가 만들 수는 없나.
“약 12만 명의 학생이 아이스크림홈런(온라인 학습 프로그램) 회원이다. 매일 수천만 건의 데이터가 축적돼 자연스럽게 빅데이터가 형성된다. 정부는 그런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 회사가 교육용 AI 개발에만 지금까지 약 450억원을 썼다. 개발자가 100명이 넘는다. 정부가 예산과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민간에 있는 것을 쓰면 되는데 따로 만든다는 게 상식적인가.”
일각에선 교육청이 사교육 업체에 혜택을 주려 한다는 시각을 드러낸다.
“빠르게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운동 처방을 정확히 내려주는 기법이 나왔다고 가정하자. 그게 민간 기업에서 만든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국민에게 보급하는 것을 꺼리면 누구의 손해인가.”

AI 활용 교육 방법을 이미 도입한 학교가 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하늘꿈중고등학교다. 탈북 가정의 중·고생이 다니는 곳이다. AI가 학생 수준을 측정해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한다. 이 학교의 송은주 교사는 “우리 학생들은 탈북 시기에 따라, 북한에서 다닌 학교에 따라 학습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고교생이 초등생 수준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가 한 명씩 개별 수업을 하기는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 업체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쓴다. 효과가 확실히 있다.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에듀테크(교육 관련 신기술)를 통한 교육 혁신을 주창해 온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민·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반대론자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설득해야 한다. 이런 기술이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스마트교육학회장이었던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매해 쓰는 것처럼, 교과서를 납품받는 것처럼 필요한 기술과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용하면 된다. 민간 기업 배 불려주는 것 아니냐는 낡은 생각 때문에 우리의 교육은 점점 뒤처져 간다”고 지적했다.

현재 학생 수십만 명이 한 달에 10만원 안팎의 돈을 내고 AI 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게 여의치 않은 가정의 학생들을 위해 교육청이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이 계획의 혜택을 볼 아이들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정의당 의원, 전교조 간부가 비판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반대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초구의 AI 교육실험…학부모 94%가 ‘만족’

서울 서초구청이 지난해 5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민간 업체가 개발)을 지역 학생들에게 보급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정환경에 따른 교육격차가 더 커질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대상자는 취약계층 가정의 초등학교·중학교 학생 246명이었다. 집에서 온라인 기기를 통해 공부하는 방법으로 학습이 이뤄졌다.

5월에는 ‘칭찬’이라는 평가(프로그램이 제시한 공부를 평균 90% 이상 수행한 경우)를 받은 학생이 25%였다. 4개월 뒤인 9월에는 그 수치가 41%로 나타났다. 16%포인트 증가했다. 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공부 습관에 변화가 생겼다고 답한 비율이 67%였다. 학부모의 만족도는 94%였다. 서초구는 이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보고 올해는 대상자를 600명으로 늘렸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