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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AH 투자의향서 없었다, 쌍용차 결국 법정관리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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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쌍용자동차의 인수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 HAAH오토모티브가 끝내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쌍용차가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자율적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주려던 법원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법원이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선언할 경우 쌍용차는 법인 청산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율 구조조정’ 시간끌기 벽에 #법원, 법정관리 개시 여부 검토 #작년 4494억 손실, 청산 가능성도 #상장폐지 사유 포함된 것도 악재

1일 법원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쌍용차는 지난달 31일 HAAH의 LOI를 제외한 채 법원에 보정서를 제출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쌍용차가 제출한 보정서에 LOI 관련 서류는 포함되지 않았다. 채권단·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한 다음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HAAH의 투자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지난달 쌍용차에 보정명령(법원에서 소를 제기한 당사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악화하는 쌍용차 실적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악화하는 쌍용차 실적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LOI를 제출하지 못함에 따라 쌍용차가 당초 원했던 자율적인 구조조정은 수포가 될 공산이 커졌다. 쌍용차는 지난해 12월 ‘자율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쌍용차 스스로 산업은행·HAAH와 협상을 마무리하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일종의 ‘묘수’였다. 하지만 2월 말을 시한으로 했던 매각은 당시 ‘4자 협의체(쌍용차·산업은행·마힌드라·HAAH)’, 특히 마힌드라와 HAAH 간 의견 대립으로 실패했다. 그러자 쌍용차는 단기 회생절차인 P플랜을 추진했다. 채권자 주도로 회생계획안을 만들어 2~3개월 안에 회생절차를 마치는 것이다. 하지만 HAAH의 투자를 전제로 한 P플랜 시행 여부도 사실상 물건너 간 모양새다.

현재 쌍용차 사건은 서울회생법원 회생 1부(부장 서경환 법원장)에 회부돼 있다. 법원이 쌍용차에 대한 법정관리를 개시할 경우, 일단 회계법인을 지정해 회사에 대한 청산·존속가치를 각각 따진다. 만약 청산 가치가 존속가치가 높다면 재판부는 쌍용차에 대한 청산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2009년 쌍용차가 처음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당시 삼일회계법인은 “인력 구조조정 및 산업은행의 신규 대출 계획 등을 전제로 쌍용차의 계속기업가치(1조3276억원)가 청산가치(9386억원)보다 3890억원이 더 많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현재 쌍용차의 상황은 12년 전과는 다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쌍용차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상장폐지 문제도 쌍용차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쌍용차는 지난달 23일 삼정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대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감사 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한다. 쌍용차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4494억원으로 2019년(2819억원) 대비 59%가량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자본잠식률 111.8%)에 빠졌고, 총부채(1조8490억원)가 총자산(1조7647억원)보다 843억원가량 많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자본력을 갖춘 새로운 인수자가 없다면 쌍용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며 “고용을 명분 삼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공적자금을 다시 투입하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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