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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재료 8, 기술 2” 중식계 큰사부 곡금초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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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16년 경기도 화성시 동탄 ‘상해루’에서 곡금초 사부가 요리를 위해 재료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이택희 음식문화탐구가]

2016년 경기도 화성시 동탄 ‘상해루’에서 곡금초 사부가 요리를 위해 재료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이택희 음식문화탐구가]

지난달 31일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한국 중화요리계의 대표주자 이연복 목란, 왕육성 진진 사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찾아왔다. 이들과 함께 1970년대부터 한국 중식의 황금기를 일궈낸 큰형님 곡금초(1952~2021) 상해루 사부의 빈소였다. 사부(師傅)는 중국 주방에서 톱 셰프와 같은 무게감을 갖는다.

19세에 서울 5대 중식집 주방장 #‘짬뽕·탕수육의 달인’ 이름 날려

10대 때부터 웍을 잡고 주방을 호령했던 이들의 우정은 60대까지 이어졌다. 이연복 사부는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무슨 일을 겪어도 한결같은 분이 곡 사부와 왕 사부”라며 “우리는 삼총사같이 서로 척하면 착 통하는 사이였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왕 사부도 통화에서 “1977년 만나 인생을 쭉 같이 해왔다”며 “둘 다 무일푼이었지만 요리에 대한 꿈으로 하나가 됐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대만 화교로 역시 중식 요리를 업으로 했던 아버지 덕에 요리업계에 발을 들였다. 19세에 당시 중화요리의 중심지였던 서울 명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기산각의 주방장 자리를 꿰찼다.

왕 사부와는 신촌 만다린에서 만났다. 왕 사부는 “3층 이상 되는 만다린 같은 곳을 차리고 말 거라는 포부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한창때 모두 13개 지점을 운영했다. 이연복 사부는 “의지가 대단했고 실력으로 일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요리인으로서 곡 사부는 재료로 승부를 봤다. 그는 생전 “요리는 재료 80%, 기술 20%”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택희 음식문화탐구가는 “곡 사부는 아침마다 돼지고기를 도축장에서 직접 받는 걸 원칙으로 했는데 냉장차에서 돼지고기를 내린 후 손을 대보고 심하게 차가우면 돌려보냈다”고 소개했다.

상해루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곡 사부가 직접 걸어 들어가도 될 정도로 큰 냉장 저장고였다고 한다. 이택희 음식문화탐구가는 “샥스핀부터 해삼까지 각종 진귀한 재료들을 간직한 보물창고였다”고 추억했다.

곡 사부에게 대중적 인기를 안겨준 데는 동생들의 역할이 컸다. 중화요리 업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곡 사부가 고전했던 때 이연복 사부가 방송 출연 다리를 놓아줬고, 이후 곡 사부는 ‘짬뽕의 달인’ ‘탕수육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유족으로는 사문·사달 형제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일 오전 10시.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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