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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수트에 쇼트커트 김진아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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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 선거 벽보에 즐비한 12명의 후보를 보셨죠. 거대 양당을 빼면 낯선 후보, 작은 목소리들입니다. 중앙일보 2030 기자들이 3040 후보들을 만나봤습니다. 서울시민에게 전하는 그들의 신념과 열정의 출사표를 소개합니다.

"여자라면 11번, 1번보다 11번. 김진아는 됩니다. 여성의당은 됩니다."

자신만만한 로고송 가사는 김진아(46) 여성의당 후보의 첫인상을 닮았다. 당당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첫 도전장을 낸 김 후보는 ‘당선’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서울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나에게 투표하면 당선된다. 어떤 후보가 득표율 50%로 당선되겠나”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3040 후보] #기호⑪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

김 후보는 출사표를 내면서도 "대체불가"를 외쳤다. “우리가 안 하면 이런 얘기를 할 정당이 없다. 위기 속 기회라고 생각해 출마하게 됐다”면서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 함민정 기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 함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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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과 쇼트커트…“절반이 내게 투표하면 당선”

지난달 3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서 만난 김 후보는 '보라색' 점프 수트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성 권익 운동을 상징하는 보라색 옷에 '쇼트커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성은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헤어스타일이다. 혜화역 시위가 있었던 2018년부터 쇼트커트를 했다. 이날 현장에 있던 10여명의 여성당원과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쇼트커트였다.

현장에는 유세 차량이 없었다. 지난해 출범한 신생 정당이니 재정적 여유가 없다고 했다. 휴대용 스피커를 켜고 직접 제작한 랩 형식의 로고송을 트는 게 메인 선거유세였다. 김 후보가 당 관계자들과 함께 가사를 써서 제작비는 들지 않았다. 김 후보는 “훼손될 현수막도 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다수가 20대 여성인 당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겠다”고 외치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가 가져온 휴대용 스피커. 함민정 기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가 가져온 휴대용 스피커. 함민정 기자

“고질적 성차별에 대한 심판”

김 후보는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 운동에 뛰어들었다. 40대에 접어드는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었던 문제들에 물음표가 생겼다고 한다. 광고기획자로 활동했던 그는 승진을 앞두고 직장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다. 이후 페미니즘 공간이라 불리는 카페 '울프소셜클럽'을 열었고 에세이집『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냈다.

김 후보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해 “단순히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닌,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을 심판하는 선거”라며 “아무도 이번 선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명쾌하게 말하지 않고, 때가 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이는 한국 사회에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선거 홍보 패널에는 "여성의당 만큼 당당한 당이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의제' 정당을 내세우며 여성에 대한 차별, 폭력,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입법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올해로 창당 1주년을 맞은 여성의당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약 21만표를 얻어 30여개 정당 중 10대 정당에 들었다.

여성의당 당원이 3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여성의당 당원이 3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딸, 아내, 엄마 아닌 시민으로서의 여성 존중"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12명 후보 중 5명이 여성이다. 다른 여성 후보에 비해 장점이 뭐냐고 묻자 “남성 중심 정당에 속하지 않다 보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온전히 여성의 입장에서 권리를 대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른 여성 후보들조차 여성을 앞세워 공약한 후보는 없다. 뭉뚱그려서 약자, 이렇게 얘기한다. 여성을 직접 언급하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 금기어처럼 돼버린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김 후보의 핵심 슬로건은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이다. 대표적 공약은 ‘서울시장 직속 여성폭력대응기구 3조직 출범’이 있다. SOS와 글자가 비슷한 ‘505 콜센터’를 연계해 성폭력·학교폭력 등 모든 형태의 여성 대상 폭력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산하 공기관 여성 임원 50% 확보, SH공공주택분양 여성세대주 의무 할당 등도 있다. 10대 여성청소년과 여성 노인을 위한 정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김 후보는 “여성의당은 여성을 누군가의 딸, 아내나 엄마가 아닌 개별 시민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1인 가구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서울시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아 여성의당 서울시장 후보와 당 관계자가 함께 쓴 로고송 가사. 함민정 기자

김진아 여성의당 서울시장 후보와 당 관계자가 함께 쓴 로고송 가사. 함민정 기자

"여성 혼자'도' 살 수 있다면 누구나 잘산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시민 최모(30대·노원구 월계동)씨는 “이번 선거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여성들을 위한 공약을 위주로 내세운 후보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모든 서울 시민을 아우르는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서모(30대·은평구 갈현동)씨는 “당선 여부를 떠나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한 표를 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권리만 옹호한다는 시선을 전하자 김 후보는 “핵심은 여자 혼자‘만’이 아니라 여자 혼자‘도’다. 이는 확장의 의미”라고 했다. “가장 대다수면서도 여전히 취약 계층인 여성이 혼자'도' 살 수 있는 서울이라면 성별·나이·계층·거주지·장애·결혼 여부를 떠나 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을 50대 50으로 동일하게 하자는, 기본적인 공정한 룰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기적인 여자'로 불러주세요"

김 후보의 별명은 ‘이기적인 여자’다. 그는 “여성이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걸 보고 우리 사회에선 이기적인 여자라고 하더라.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이기적인 주장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다음 선거 때 더 많은 여성의당에서 더 많은 여성 후보들이 나올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김 후보는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투표하면 된다. 변화는 생각보다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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