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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만에 북적이는 공원…'10만명 사망' 그 영국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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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현지시간) 런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휴식 중인 시민들. 앞서 29일 시작된 3차 코로나 봉쇄 완화로 6인 이하의 야외 모임과 야외 스포츠 활동이 재개됐다. 런던=연합뉴스 EPA

3월 31일(현지시간) 런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휴식 중인 시민들. 앞서 29일 시작된 3차 코로나 봉쇄 완화로 6인 이하의 야외 모임과 야외 스포츠 활동이 재개됐다. 런던=연합뉴스 EPA

“패스, 패스, 잘했어!”

[르포] 감염자·사망자 줄며 봉쇄조치 완화 시작 #운동·피크닉 나선 시민들에 공원 '북적' #빠른 백신 접종에 "국민 절반 항체 보유" #3차 확산 비상 걸린 프랑스·독일과 대조

31일(현지시간) 오후 2시 영국 런던 켄싱턴 가든 곳곳에선 어린이 축구 교실이 한창이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꼬마 선수들이 공을 몰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보호자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지난달 29일 야외 스포츠 활동이 재개되며 볼 수 있게 된 장면이다.

3월 31일(현지시간) 런던 켄싱턴 가든. 영국 정부가 석 달만에 3차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완화하면서 공원 등에서 6인 이하의 야외 모임과 스포츠 활동이 재개했다. 런던=전영선 기자

3월 31일(현지시간) 런던 켄싱턴 가든. 영국 정부가 석 달만에 3차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완화하면서 공원 등에서 6인 이하의 야외 모임과 스포츠 활동이 재개했다. 런던=전영선 기자

영국에서 석 달 넘게 이어진 '3차 코로나 봉쇄'가 풀리면서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 한때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가장 심각했던 영국은 ‘집에 머물기(Stay-at-home)’로 대표되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를 시행하는 동시에 백신 접종 속도전을 벌여왔다. 그리고 어느덧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규제 완화 첫날, 각 지역 골프장에선 자정에 맞춰 티샷을 하며 긴 봉쇄의 끝을 자축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완화 사흘째에 접어든 지난달 31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100만㎡ 넘는 켄싱턴 가든엔 빈 벤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붐볐다. 6개월 된 딸과 두 살 아들, 남편 등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은 세실(30)은 이날 이모와 사촌 동생과도 만나 피크닉을 즐겼다. 그는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게 1년도 더 됐다“며 ”때마침 날씨도 좋아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물론 당장은 제약이 남아있다. 야외에서 6명 이하의 그룹 혹은 두 세대(인원제한 없음)가 모여 모임을 할 수 있는 정도다. 봉쇄 기간엔 운동 목적으로 야외에서 두 명이 만나는 것까지만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축구와 골프, 테니스 등 야외 운동을 할 수 있고 하객 6명 이하의 결혼식도 치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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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달 8일에는 초ㆍ중ㆍ고등학교 등교가 재개됐다. 이달 12일부터는 미용실, 의류점 등이 문을 열고 식당과 술집의 야외석 운영도 가능해진다. 5월엔 극장과 각종 공연장, 식당 실내석 사용도 허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영국의 나머지 지역도 며칠씩 시차를 두고 '정상화 로드맵'을 따라가고 있다.

영국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작지 않은 희생이 있었다. 올 1월에는 하루 확진자가 7만명 가까이 치솟으면서 병원 중환자실 병상이 동났고, 의료체계는 붕괴 직전까지 갔다. 코로나19 사망자(확진 판정 이후 28일 이내 사망)가 총 10만명을 넘어서자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식료품점·약국 등 필수 점포를 제외한 상업 시설의 영업을 모두 중단하는 극단적 봉쇄에 들어갔다.

영국은 확진자 감소와 백신 접종 순항으로 3차 봉쇄를 완화했지만 식당, 주점의 실내 영업 재개는 5월께 허용할 전망이다. 3월 31일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신년 예약 안내 문구를 그대로 둔 채 영업을 중단한 런던의 한 식당. 런던=전영선 기자

영국은 확진자 감소와 백신 접종 순항으로 3차 봉쇄를 완화했지만 식당, 주점의 실내 영업 재개는 5월께 허용할 전망이다. 3월 31일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신년 예약 안내 문구를 그대로 둔 채 영업을 중단한 런던의 한 식당. 런던=전영선 기자

봉쇄와 함께 상황 반전의 계기를 제공한 건 백신이다. 영국은 지난해 12월 8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후 속도전에 나서면서 1일 현재 전체 인구의 약 45%인 3090만여명이 1차 접종을 받은 상태다. 이미 코로나19를 앓고 회복된 이들까지 합하면 국민 절반 정도가 이미 항체를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바다 건너편 프랑스ㆍ이탈리아ㆍ독일 등의 접종률이 11%대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월등한 속도다.

그 결과 확진자는 꾸준히 줄어 최근 3000~4000명대를 기록 중이다. 사망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영국의 하루 코로나19 사망자는 29일 19명, 30일 2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20~22일 하루 사망자가 1000명 이상 발생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감소한 것이다. BBC는 29일 수도 런던에선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19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망자가 크게 줄어든 건 특히 코로나19에 취약한 고령층에 빠르게 백신을 접종한 효과라는 평가다. 영국 통계청은 70세 이상 인구의 76%, 80세 이상의 86%가 항체를 가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7월까지 전 국민에 대한 1차 접종을 마친다는 목표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백신 8종에 선투자해 총 4억5700만 도즈를 확보한 덕에 매일 20만~25만 명이 접종을 이어가고 있다. 백신 확보량이 넉넉하니 9~10월 70세 이상 고령자 등 취약층에 '부스터 백신'으로 불리는 3차 접종을 해 변이에서 보호하자는 논의도 나온다.

계획대로라면 영국은 올여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변수가 많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지에선 봉쇄 완화에 긴장이 풀리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잉글랜드 동부에 위치한 노팅엄시는 봉쇄 완화 하루 만인 지난달 30일 주요 공원 두 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완화 첫날 흥분한 대중 수백명 몰려 술을 마시고 춤추면서 '6인 그룹 유지' 등이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공공의료 최고 책임자인 이본느 도일 교수는 절대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호소하면서 ”아직 고비를 넘긴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경고했다.

인근 유럽 주요국들에서 3차 확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영국으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특히 프랑스의 상황이 심각하다. 프랑스에선 지난 25~28일 4일 연속 하루 4만명대 확진자가 쏟아졌고, 31일 사망자는 361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확진자가 지난 2월 초에 비해 2배에 달하면서 의료 체계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프랑스는 오는 주말부터 4주 동안 전국 봉쇄에 돌입한다고 31일 발표했다. 지난해 3월, 10월에 이어 세 번째 봉쇄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최근 하루 1~2만명 수준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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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해협을 사이로 이처럼 코로나19의 명암이 교차하면서 각국 지도자들의 희비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달 14일 기준으로 45%로 나타나 지난 2월 말보다 6%포인트 올랐다. 반대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2월 41%에서 3월 37%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방역 리더십'으로 주목을 받았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여당연합의 지지율 역시 1월 36%에서 지난달 28%로 하락했다.

런던=전영선 기자, 서울=임선영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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