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더 순탄하게 갈 수 있는 걸 약간 장애물이 생긴다고 보면 되겠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친여(親與)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4·7 재·보선 결과와 관련한 대선 전망에 대해 한 말이다. 김씨가 “보궐선거에 지면 다음 대선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를 우리 쪽(민주당)에서 이기면 좀 순탄하게 대선까지 가는 것이고 만약에 잘못되면, ‘비포장도로’로 간다고 보면 된다”며 “(왜냐하면) 저쪽(국민의힘) 후보 중에서 대선 후보감이라고 볼만한 사람이 눈에 안 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자 민주당에선 “이번에 지면 내년 대선까지 어려울 수 있다”(민주당 당직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자 이 전 대표가 직접 나서 대선 영향 차단론을 편 것이다.
보궐선거 사전투표(4월 2~3일) 하루 전 전격적으로 등판한 이 전 대표는 지지층 결집을 위한 메시지도 선명하게 내놨다. 이 전 대표는 “지금부터가 각자 지지 세력이 결집할 때라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며 “내부 여론 조사상으로 (박 후보와 오 후보 간 격차가) 좁아지는 추이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도 “지지층 결집 보다 이탈 유발” 우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위기론에 더 방점을 뒀다. 그는 “아직은 민주당 후보가 좀 뒤처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지금 봐서는 꼭 역전을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결과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일선에선 투표 권유를 하는 분위기가 시작되는 거 같다”며 “우리(민주당) 지지층이 강한 데가 40대(부터) 50대 중반까지다. 그분들이 어느 정도 (사전투표를) 하는가를 보면 (판세가) 짐작이 갈 것”이라며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1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선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고 나왔는데 요새 돌아가는 거 보니까 거의 뭐 선거는 이긴 것 같다”고 했었다. 13일 만에 판세 전망이 ‘긍정’에서 ‘위기’로 바뀐 셈이다.
이에 서울의 한 친문 성향 의원은 “예전엔 지지층에 자신감을 주며 흐트러진 결속력을 높이고자 한 메시지였고 이번엔 유보적인 지지층에게 ‘어려우니 사전투표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사전투표에서 기세를 잡고 본 투표에서 중도층 싸움으로 승부수를 띄우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재등판에 대해 당내에선 우려도 나온다. 전날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에 이어 이날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도 “민주당이 부족했다. 다시 한번 민주당에 기회를 달라”며 자성론을 펴는 기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 전 대표 등장에 강성 지지층은 환호하겠지만, 이들 대다수는 어차피 적극 투표층이어서 표를 추가하는 데 도움은 안된다”며 “반면 이 전 대표 등판에 비판적인 지지층의 이탈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극성 친문 지지층이 장악한 민주당 당원게시판에도 “보선 망치려고 나섰느냐”라거나 “민주당에 도움 안되는 발언은 삼가달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 전 대표가 “내부 여론조사상 좁아지는 추이”라고 한 발언도 구설에 올랐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 전 대표가 언급한 것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등록 여론조사가 아니므로 어떤 곳에서도 결과를 공표하면 안된다”며 “서울시 선관위는 선거 질서를 교란하는 모든 행위를 엄격하게 제재해 달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밀리는 민주당 입장에선 이 전 대표 등판 카드 외엔 마땅한 사전투표 독려 카드가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이 전 대표가 가진 강성 이미지 탓에 되레 중도층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