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정재의 시시각각

집값 대신 국민 잡는 공시가격

중앙일보

입력 2021.04.01 00:38

업데이트 2021.04.0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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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 정부 들어 연례행사가 된 게 있다. 공시가격 이의신청이다. 2018년 1290건에서 2019년 2만8753건, 작년엔 3만7410건이 쏟아졌다. 올해는 사상 최대였던 2007년(5만6355건)을 웃돌 전망이다. 이미 곳곳에서 조직적 저항 움직임도 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3무(無) 공시가격’을 들이대며 세금을 내라면 누가 곱게 내겠느냐”고 했다. 그는 이 정부의 공시가격이 공정·투명·전문성이 없는 ‘3무’라고 했다.

세정의 기본은 ‘납세자의 납득’
깜깜이 공시가격 편 가르기 증세
어느 국민이 흔쾌히 세금 내겠나

정 교수는 자타공인,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이 가장 싫어하는 학자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공시가격 바로잡기 범국민운동 본부장’이라고 부른다. 국토부와 감정원을 신랄하게 비판해 온 그의 전력 탓이다. 그가 언론에 이름을 알린 것도 감정원 노조가 그를 형사고발하면서다.

경제학자로는 드물게 공시가격을 연구한 그가 행동가로 변신한 건 2016년께다. 복지 신청에서 탈락한 며느리가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한 제주의 사건이 계기였다. 공시가격은 63개 세금과 보조금, 벌금과 과태료에 연동된다. 재산·상속·증여세는 물론 기초·장애인 연금,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선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사람 잡는 보유세 개혁이냐”며 논문과 세미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비전문적 평가, 국토부와 감정원의 유착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했다. 감정원 노조가 발끈했다. “감정원의 전문성을 비난했다”며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6개월, 그는 거대 행정 권력의 힘을 절감했다. 선후배로부터 “그사람들과 척져서 좋을 것 없다. 적당히 물러서야 안 다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기운이 쭉 빠졌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오기라고 해도 좋았다.

마침 든든한 정치적 원군을 얻었다. 제주도가 공시가격검증센터를 지난해 설립했다. 다음 대선은 필히 ‘부동산 선거’, 눈 밝은 원희룡 지사가 정수연 교수 같은 이를 놓칠 리 없다. 센터장이 된 그는 제주 표준주택 정밀 검증에 착수했다. 이달 초 첫 결과를 발표했다. 10%의 표준주택(439곳)을 점검했더니 47건이 엉터리였다. 폐가나 빈집은 물론 절까지 ‘표준주택’이었다. 표준주택은 주변의 다른 주택을 재는 잣대다. 잣대부터 틀리면 나머지는 보나 마나다. 118억원의 관련 예산을 받고도 제대로 현장조사를 하지 않은 탓이다. 국토부는 “지자체 자료가 문제”라며 책임을 제주도에 돌렸다. 제주도는 “그러려면 공시가격 산정 권한을 제주도에 넘기라”고 맞받았다. 제주도와 국토부의 거친 공방전을 정 교수는 환영한다. 싸움은 거칠수록, 요란할수록 좋다. 그래야 감춰졌던 부조리들이 낱낱이 드러날 터였다. 그는 이를 통해 크게 세 가지를 바로잡고 싶어 한다.

첫째, 조세 법정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공시가격 인상을 통한 증세는 그야말로 ‘조세 국토부 결정주의’다. 일개 장관이 가격과 지역에 따라 편을 가르고 징벌적 세금을 매긴다는 게 말이 되나. 둘째, 애꿎은 복지 탈락자들을 구해야 한다. 책상에서 휙 써갈긴 숫자 하나가 한 가정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시가격 인상에 맞춰 기초수급자 산정 등 각종 복지 체계를 재조정해야 한다. 셋째, 셀프 산정, 셀프 검증을 가능케 하는 국토부와 부동산원의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 2019년엔 국토부가 감정평가사들에게 “일부 고가 토지는 두 배로 올리라”고 구두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저 집은 재벌 집이니 올려라, 저 땅은 정치인 땅이니 낮추라는 지시는 왜 없었겠나.

정 교수는 평가·산정은 국토부와 부동산원, 감정평가사가 맡고 이를 각 지자체가 검증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냈다. 제주에 첫 검증센터가 생겼지만 갈 길은 멀다. 거대 공시권력을 독점한 국토부는 버거운 상대다. 그래도 그는 일전불사다. 이 정권에서 안 되면 다음, 그다음 정권에서라도 끝을 보겠다고 했다. 공시가격 바로잡기 범국민본부장답다. 그의 싸움을 응원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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