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헌법 정신 훼손하는 부동산 대책

중앙일보

입력 2021.04.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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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설익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직자가 과거 부동산 투기로 번 돈까지 소급해 몰수하고, 현재 4급 이상 고위 공직자가 대상인 재산 등록 범위를 모든 공무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위헌 가능성이 있는 소급 입법과 공무원의 재산권 제한 추진은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고, 법이 통과된다 해도 투기 근절에는 효과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건 오는 7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 따른 국민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LH 사태로 설익은 대책 쏟아져
개인의 경제적 자유 존중하고
규제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문제는 정부·여당의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규제와 처벌로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권도 이런 식의 대책으로 투기를 근절하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논리에 따르지 않고 정부가 우격다짐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 하면 백전백패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시장을 모른 채 규제만 쏟아냈기 때문이다.

또 정부·여당은 초강력 투기 근절 대책이 민심을 다잡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이마저도 실패할 공산이 크다. 조지 레이코프 UC버클리 교수는『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상징 동물 코끼리)이 내놓은 정책을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의 정책 프레임을 각인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정부·여당이 투기 근절을 강조하면 국민은 부동산 정책이 대실패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LH 사태는 정부가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청년들은 치솟는 집값에 “이생에서 내 집 마련은 틀렸다”며 체념하고 있다. “부동산은 자신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조롱거리가 됐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들끓는 민심에 불을 질렀다. LH 사태와 4·7 선거는 임기가 1년 1개월 남은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실효성 없는 규제 위주의 투기 방지 대책에 매달리면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은 가속할 것이다.

서소문 포럼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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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그 반성을 토대로 전문가 논의를 거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념에 갇힌 청와대와 여당의 이너서클에서 자기들만의 목소리를 되먹임하는 대책은 또 다른 실패를 낳을 뿐이다. 청와대·여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통해 숙성된 대책이 나와야 한다.

대책은 시장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규제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의 힘을 무시하고 정부의 힘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한다. 이로 인해 시장 실패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정부 개입이 있으면 시장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과 정부는 상호 보완해 가며 시민 행복 추구를 돕는다. 정부의 적절한 개입 없는 자유 방임주의는 사회 불평등을 초래하고, 시장을 무시하는 정부 대책은 비효율과 실패로 이어진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過猶不及)는 공자의 말은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서도 유효하다.

투기와 투자는 경계가 모호하다. ‘투자는 실패한 투기’ 라거나 ‘내가 하면 투자, 네가 하면 투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부동산 투기자를 친일파와 같은 처단 대상으로 보고 무기징역형까지 살도록 법제화하는 건 지나치다. 많은 사람이 주식이나 암호화폐·부동산에 투자한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주식·암호화폐에 투기한다고 비난받진 않는다. 반면 부동산 투기는 공분 대상이다. 이는 부동산이 공공재 성격이 있어 가격 등락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가 나쁘다고 정부가 개인의 욕심을 법이나 규제로 없애려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부작용만 낳는다. 정도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수 있게 정책을 펴는 것이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고 급진 정책이나 법을 밀어붙이면 역효과만 난다. 헌법 119조는 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며, 2항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헌법이 정부의 경제 규제를 인정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가운데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에서 중용을 지켜야 한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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