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컬 프리즘

조민과 부산대

중앙일보

입력 2021.04.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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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대학을 흔히 지성과 양심의 보고(寶庫)로 여긴다. 우리 사회에 큰일이 발생했을 때 그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바르게 보고, 여기서 옳고 그름을 분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앞장서서 보여준 과거가 있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대학교는 영남권의 빼놓을 수 없는 ‘지성’과 ‘양심’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그 위상이 크게 훼손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와 관련해 연거푸 안이한 대응을 하면서다. 부산대는 최근 부정입학 의혹을 받는 조씨에 대해 자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3개월 만이다. 당시 재판부는 조씨가 의전원 입시 과정에 제출한 총장 표창장 등 ‘7대 스펙’을 모두 허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허위 서류가 없었다면 조씨가 탈락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부산대는 정 교수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 입학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뭉그적거렸다.

독수리와 책 등을 상징하는 부산대 로고. [연합뉴스]

독수리와 책 등을 상징하는 부산대 로고. [연합뉴스]

이후 대학 안팎의 비판에도 부산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먹이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이 문제에 소신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던 부산대 입장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요구가 나오자 순식간에 바뀌었다. 지난달 8일 교육부가 부산대에 조씨 관련 조치 계획을 요구하자 부산대가 22일 ‘자체조사를 해 입학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보고하면서다.

유 부총리는 지난달 24일 ‘제18차 교육신뢰회복 추진단’ 회의에서 “대학은 판결과 별도로 학내 입시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일련의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며 “입학 취소 권한을 가진 대학이 이런 조처를 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에 따른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다르므로 부산대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사실관계 조사와 청문 등의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며 “부산대에서 보고한 조치 계획이 충실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부총리 말에 따르면 부산대는 그동안 ‘판결과 별도로 학내 입시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일련의 조처를 할 의무’가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 또 부산대를 지도·감독해야 할 교육부도 3개월 동안이나 그런 부산대를 지켜보고만 있었으니 둘 다 직무유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뒤늦은 조치가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자초했다.

늦었지만 부산대가 입학전형 공정 관리위원회를 통해 조씨 입학 관련 비리 의혹을 조사한다고 하니 그 결과는 조만간 나올 것이다. 그러나 개교 75주년을 맞은 부산대가 홈페이지에 내 건 ‘시대를 열어가는 담대한 지성’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양심’ 있는 학교로 명예를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지도 모른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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