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남편 손가락에 끼어있던 5돈 금반지, 누가 가졌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03.31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5)  

친구가 멀리 이사를 간다. 이 나이에 능력자로 전출이라 축하할 일이다. 그래도 섭섭해하는 내게 선물이라며 책 몇 권과 책상 위에 얹어 쓰는 가죽 덮개를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가끔 그 집에 놀러 가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할 때면 손을 스치는 감촉이 좋아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갖고 싶었다. 내 형편엔 비싸서 엄두를 못 낸 물건이었는데, 마음을 읽었나 보다. 정말이지 입도 벙긋 안 했는데 내 마음을 들켰다.

“책상도 가지고 가는데 이걸 주면 너는” 하고 물으니 “글도 쓰고 남은 학기 동안 과제물 숙제도 하려면 책상 사용 많이 하는 네가 더 필요할 거야”라며 소소하고 미숙한 글쓰기까지 추켜준다.

병실에 들르는 요양사와 간호사 간병인 모두 남편의 빛나는 반지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떠나기 일주일 전 무심코 본 손가락에 반지가 없었다. [사진 pxhere]

병실에 들르는 요양사와 간호사 간병인 모두 남편의 빛나는 반지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떠나기 일주일 전 무심코 본 손가락에 반지가 없었다. [사진 pxhere]

좋은 선물을 받으니 남편과의 소박한 일상이 생각난다. 시간이 많아 남편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절로 마실 다녔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곳에 자주 가다 보니 스님도 공양주 보살과도 친해지고 가끔은 밥도 얻어먹고 오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심하게 다툰 뒤 찾아가 주절주절 서로를 헐뜯고 푸념을 하면 “허허허 어떤 말을 해도 알콩달콩 부럽기만 합니다”라며 웃던 스님이었다. 눈뜨면 전쟁터인 우리 부부의 허접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부러운 그림이기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입고 간 회색 털실로 짠 스웨터를 보더니 색상이랑 디자인이랑 너무 아름답다며 부러워했다. 순간 남편은 옷을 벗어 스님에게 입혀 드렸다. 색상까지 승복이랑 비슷해서인가 정말 잘 어울렸다. “이거 선물 받은 건데 내가 오늘 첨 입고 나왔으니 새거나 다름없어요. 스님이 나보다 더 잘 어울리니 그냥 입으세요.” 남편은 흐뭇하게 웃었다.

딱 한 번 입고 나간 새 옷을 스님에게 훌러덩 벗어준 남편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는 뭐라 말도 못하고 눈총을 주었다. 스님은 고맙다며 합장을 했다.

돌아오며 나는 “그게 실값이 얼마인데, 오랜 시간 정성으로 짜 선물한 올케에게 뭐라 할 거냐”고 투덜거렸고 남편은 “그리 아쉬우면 처남댁에게 한 개 더 짜라고 하면 되지. 뭔 걱정이고”라며 응수했다. 그러면서 좋은 물건도 살아 있을 때 줘야 선물이지, 죽고 나서 주면 유품이 되고 받는 사람도 찝찝하고 귀신물건이 된다며 되레 큰소리친다.

남편의 회갑기념으로 딸아이가 선물한 다섯 돈짜리 용무늬 금반지도 그랬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다. 병실에 들르는 요양사와 간호사 간병인 청소하시는 분 모두 남편의 빛나는 반지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떠나기 일주일 전 무심코 본 손가락에 반지가 없는 것이다. 도저히 궁금해서 남편에게 반지 어떡했냐고 물으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헉, 날 줘야 하는 게 정답 아닌가? 나는 죽어가는 남편은 뒷전이고 혼자서 얼마나 구시렁거리며 아까워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 부끄럽다.

죽은 사람의 재산 갖고 피 터지게 싸우는 걸 십분 이해한다. 그때 남편이 나에게 반지를 주었다면 나는 또 어느 자식에게 줄까 저울질하느라 아이들 속만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티끌만 한 불상사도 피하라고 적당한 가족선물만 남기고 떠났나 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지금 잘 사는 것이 누군가의 감사기도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가끔은 누구에게 선물 한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하하.

남편이 벗어 스님에게 입혀 드린 회색 털실로 짠 스웨터. [사진 pixabay]

남편이 벗어 스님에게 입혀 드린 회색 털실로 짠 스웨터. [사진 pixabay]

어느 책에서도 말했다. 값나가고 비싼 물건이지만 내가 쓰지 않고 보관하던 것을 누군가에게 주면 그것은 재활용이고, 좋은 선물이란 내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하는 물건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원할 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빈부 격차는 더욱더 심해지고 많은 재산을 쌓아두고도 더 가지지 못해 투덕거리고 잠을 못 이루어 프로포폴인가 뭔가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온다는 세상이다. 물질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나도 많은 재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기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풍요함이 가득하고 여유로운 건 확실하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