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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손 못대는 檢···법조계 "이게 조국 수사권 설계의 부작용"

중앙일보

입력

2018년 6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담화 및 서명식'에서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상선 기자

2018년 6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담화 및 서명식'에서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상선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에 검찰 인력이 대거 투입된다. 그런데 정작 검찰은 "역할이 무엇인지"부터 논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현재 수사 체계에서 검찰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어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수사권 축소로 예상됐던 부작용이 불과 법 시행 3개월 만에 드러났다"며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세균 지시받은 대검 "검사장 회의서 검찰 역할 논의"

대검찰청은 30일 전국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사범 전담팀 확대 편성 ▶최근 5년간 처분된 부동산 투기 관련 사건 재점검 등을 지시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31일 '전국 검사장 화상 회의'를 열어 투기 범행 근절을 위한 검찰의 역할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9일 "전국 43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사범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500명 이상의 검사·수사관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정 총리는 검찰을 배제한 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이 사안을 맡긴 지 20여일 만에 검찰에 손을 내밀었다. 수사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경찰의 눈에 띄는 수사 결과는 내부 정보를 활용해 투기한 혐의를 받는 포천시 공무원에 대한 구속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LH 사태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부동산 부패 청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부동산 부패 청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현행 수사 체계에서 검찰이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경제·부패·공직자 범죄라 하더라도 4급 이상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급 이상, 3000만원 이상 뇌물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검찰의 고육책은 최근 5년간 처분된 부동산 투기 관련 사건을 재검토해 직접 수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개정된 형사법 체계에서 송치 후 불기소 처분됐다가 제기된 사건 및 이와 직접 관련성 있는 범죄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찰이 초기부터 직접 수사를 주도한 1·2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 때처럼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웅 "현 수사체계, 조국 민정수석실이 설계"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현행 수사체계를 만든 장본인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꼽는다. 조 전 장관은 2018년 6월 민정수석 시절 당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합의안 마련을 주도했다. 당시 제시된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검경 체계도'에 따르면 검찰의 인지부서는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선거범죄 등에서만 직접 수사권을 갖도록 했다. 이를 기초해 거대 여당은 지난해 1월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 통과시켰다. 이후 시행령은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에 현재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를 명시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여기서 더 나갔다. 법원의 판단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처분이 무위로 돌아가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까지 밀어붙였다. 다만 윤 전 총장의 사퇴로 현재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2018년 6월 21일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에 담긴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검경 체계도. [사진 법무부]

2018년 6월 21일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에 담긴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검경 체계도. [사진 법무부]

2018~2019년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죄명으로 지정하도록 설계한 건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그가 이끌었던 민정수석실"이라며 "당시에도 검찰 수사권을 특정 죄명으로 나열해 제한하면 반부패 역량이 떨어진다고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죄명으로 수사기관을 구분하는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1년 전 부작용 예상했던 이완규 "사건의 중요성 따져야" 

법무법인 동인 이완규 변호사. 연합뉴스

법무법인 동인 이완규 변호사. 연합뉴스

검찰 재직 당시 대표적인 형사법 전문가로 꼽힌 이완규 변호사도 이 같은 부작용을 예상해 미리 경고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4월 출간한『2020년 검찰개혁법 해설』에서 "개정 검찰청법과 같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군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한하려 하면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 속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범죄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이 변호사는 "인지수사는 원칙적으로 단서에 규정한 범죄영역에 대해서 행하도록 하고, 다른 영역에서는 사건의 중요성, 복잡성 등 그 성질에 비춰 필요한 인지수사를 하도록 한다는 식으로 업무 수행방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사실상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를 맡긴 측면이 있어 검찰도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국민적 사건 등 특별한 요건을 갖춘 사건은 검찰총장이 요청하고 법무부 장관이 승인하는 방식으로라도 직접 수사가 가능하도록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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