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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레터] '병맛'게임인데 시총 42조 로블록스···'고퀄' K게임 속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그래픽=정다운 인턴

그래픽=정다운 인턴

지난 10일 뉴욕증시에 상장한 로블록스(Roblox)는 단숨에 미국의 ‘게임 빅4’ 반열에 올랐다. 시가총액 369억 달러(42조원ㆍ29일 기준)로 액티비전 블리자드(82조원), 일렉트로닉 아츠(44조원), 테이크 투 인터랙티브(23조원) 사이에 안착했다. 지난해 손실 2억 5300만 달러(2868억원)의 적자 기업에 자본시장은 한국의 게임 3사(넥슨 시총 33조원, 엔씨소프트 19조원, 넷마블 10조원)보다 높은 가치를 매겼다. ‘게임판 유튜브’라는 로블록스의 등장을 바라보는 게임사들의 속내는 복잡미묘하다.

팩플레터 82호의 요약본

#1. ‘떡상’의 원동력

게임 좀 하는 성인이 로블록스를 시작하면 두 번 놀란다. 그래픽 조잡하고 구성도 단순한 게임을 수억 명이 한다는 데 한 번. 그런 게임이 5000만개 이상이라는데 또 한 번. 정교한 물리법칙이 적용된 실사급 그래픽을 자랑하는 ‘트리플A’ 게임 이용자라면 로블록스 앱을 바로 닫아버릴 가능성이 99%다. 그런데 이게 로블록스의 ‘찐매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물리법칙 따윈 무시하고 원초적 재미를 주는 게임이 인기다. ‘타워 오브 헬’은 제한 시간 안에 아바타로 탑을 오르는 게임이다. ‘병맛’(맥락없고 어이없음) 스타일이지만, 누적 106억 명 이상이 이 게임을 즐겼다. 국내 대형 게임사 고위 임원은 “탑을 오르다 떨어진 아바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친구들과 함께 낄낄거리는 원초적 재미가 있다”며 “트리플A 게임과는 재미의 문법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2. 로블록스의 one more thing

로블록스 인기게임 중하나인 패션쇼. [사진 로블록스 캡처]

로블록스 인기게임 중하나인 패션쇼. [사진 로블록스 캡처]

로블록스는 유튜브 같은 창작자들이 노는 플랫폼이다. 게임하던 사람이 게임을 만들어 배포할 수 있다. 구글플레이ㆍ에픽게임스ㆍ스팀 등 게임 유통 플랫폼은 전에도 있었지만, 로블록스는 게이머와 제작자 구분을 없앴다. 무료로 쓸 수 있는 게임제작 프로그램 ‘로블록스 스튜디오’는 MS 그림판 수준으로 단순하다. 어린이도 금세 배울 수 있다. 게임하던 친구들끼리 같이 게임을 만들어 다른 유저에게 팔기도 하는 로블록스엔 매일 3260만명이 접속한다.

#3. 잘나가는 K게임 불안한 이유

한국은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다. 20여년 전 “게임은 제품(패키지)이 아니라 서비스”라며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디스켓·CD에 담아 팔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 업데이트로 수명을 10~20년 단위로 연장한 ‘게임의 에버그린 콘텐트화’를 주도한 건 한국 게임회사들이었다. 확률형 아이템 같은 비즈니스 모델까지 갖춘 K게임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일까. 수익성은 사상 최고인데, 혁신성은 글쎄라는 평가. 최근 K게임의 미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① 기로에 선 K게임
항의 시위부터 불매운동까지, K게임 유저들의 불만은 마비노기·메이플스토리(넥슨)와 리니지(엔씨소프트) 같은 유력 IP 게임에 향해 있다. 핵심은 확률형 아이템. 아이템이 뽑힐 확률이 지나치게 낮은데도 유저의 결제를 유도했다는 비판이다. 싯가 수억 원짜리 아이템을 게임사가 만든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국회에선 관련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개정안이 줄줄이 발의됐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2일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전부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K게임의 혁신 DNA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몸집은 커졌고 모험은 줄었다는 평가. 대학 동기 개발자 3명이 뭉쳐 대박을 터뜨린 ‘애니팡 신화’가지금도 가능할까. 이젠 개발자 수백 명이 수년 간 수백억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 게임 아니면 설 곳이 없다. 검증된 IP로 안정을 택하는 게 대세가 됐다. 현재 구글플레이 매출 상위 10위 게임의 절반 이상이 기존 인기 IP로 만든 후속편이다.

그래픽=한건희 인턴

그래픽=한건희 인턴


② K게임의 돌파구

물론 한국 게임사가 손 놓고 있진 않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확률을 전면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서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도 준비 중이다. 넥슨은 지난 15일 ‘프로젝트 MOD’ 경력 개발자 채용 공고를 냈다. 로블록스처럼 이용자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 내놓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 넥슨은 채용 공고에서 “기존 게임 개발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는 K팝 팬덤 커뮤니티 플랫폼 ‘유니버스’를 지난 1월 말 출시했다. 스타와 팬이 가상공간에서 만나 소통하는 메타버스다. 초창기라 기술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난 23일 기준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500만건을 돌파했다.

#4. 그렇다면 게임의 미래는

‘게임 유저의 자유창작’에 기대는 로블록스형 게임이 ‘스튜디오의 웰메이드’ 게임을 넘어서 게임 산업의 판까지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비중은 후자가 여전히 더 크고, 한국 게임산업도 여기에 강하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의 조영기 박사는 “미슐랭 3성급 레스토랑과 김밥천국이 각각 잘 되듯, 둘은 병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10년 전 유행했던 ‘소셜게임’처럼 반짝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특히 회의적인 이들은 로블록스 이용자의 54%가 12세 미만이라는 데 주목한다. 애들도 크면 웰메이드를 찾을 것이란 주장. 국내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초통령’ 로블록스가 중통령ㆍ고통령ㆍ대통령까지 될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민제·심서현 기자 letmein@joongang.co.kr

팩플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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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3월 30일 팩플 뉴스레터로 구독자들에게 발송된 '로블록스 깜짝이야, 그런데 엔씨는?'의 요약 버전입니다. '게임판 유튜브'로 불리는 로블록스(RBLX:NYSE)가 지금 뜨는 이유, 이를 바라보는 전통 게임사의 복잡미묘한 속내, 앞으로의 전망까지 분석한 팩플 뉴스레터 전문을 보고 싶으시면 이메일로 구독 신청하세요. 요즘 핫한 테크기업 소식을 입체적으로 뜯어보는 ‘기사 +α’가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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