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김어준 없는 아침이 두려운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2021.03.31 00:40

업데이트 2021.03.3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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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어준, 그가 없는 아침이 두려우십니까? 이 공포를 이기는 힘은 우리의 투표입니다. 오직 박영선! 박영선입니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SNS에 올린 글이다. 왜 그들은 김어준(‘뉴스공장’ 진행자) 없는 아침을 ‘공포’라 부르는 걸까? 어쩌다가 서울시장이 고작 김어준의 밥그릇이나 지켜주는 자리로 전락했을까?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익·신뢰·중립·시의·흥미성 모두 최하위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김어준 프로 지원, 공공재 TBS를 사유화
이해찬 “김어준이 민주당 위해 큰일 한다”…여당 헤게모니 구축에 활용
핵심 지지 40대 무너지면 레임덕, 정권 재창출 어려워 공포 느끼는 것

민주당의 프로파간다 머신

지난 2011년 김어준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박원순 후보에게 “시장 되면 저에게 교통방송을 달라”고 농을 했단다. 이 농담은 5년 뒤인 2016년 정말 현실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에서 가장 많은 제재를 받은 프로그램이 되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조사에서 ‘뉴스공장’은 경쟁 프로그램 중 유익성·신뢰성·중립성·시의성·흥미성의 5개 항목 모두에서 최하위. 특히 공영방송의 생명인 ‘중립성’은 54점으로 경쟁 프로그램인 ‘김현정의 뉴스쇼’(87점)나 ‘김종배의 시선집중’(84점)에 30점 이상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TBS의 총예산 505억 원 중 77%는 서울시가 부담한다. 서울시에선 2019년 라디오 홍보예산의 43%를 ‘뉴스공장’에 배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작년 라디오 광고의 47%를 TBS에 주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3년간 라디오 홍보비의 54%, 서울시교육청은 42%를 ‘뉴스공장’에 집행했다.

4기 방심위 출범 이후 ‘뉴스공장’이 받은 6차례의 제재는 사유가 모두 ‘객관성 위반’. 그동안 노골적으로 당파성·편파성을 추구해 왔다는 얘기다. 이렇게 정부와 지자체와 교육청이 손을 맞잡고 민주당의 ‘프로파간다(선전 선동) 머신’을 지원해 왔다. 전파든 세금이든 공공재를 이렇게 사유화해도 되는가?

선동으로 마비된 정당 기능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는 그의 당파성을 공공연히 찬양한다.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다.” 과거에 언론인의 표상은 손석희 JTBC 사장이었으나, 지금 그들의 영웅은 김어준. 그 동네의 지적·도덕적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의 위기는 이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 나는 눈이 나빠서 책을 못 봐. 대신 유튜브를 봐. 김어준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어.”(이해찬 전 대표) 집권여당의 대표가 책은 안 읽고 음모론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다. 대표가 이 지경이니, 의원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들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어준의 ‘세례’를 받으려고 안달이 났단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대중의 흥분을 차가운 이성으로 거르고, 그들의 거친 언사를 정제된 언어로 정식화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의 586 실세는 김어준의 선동방송을 통해 대중을 늘 정치적 흥분 상태로 몰아넣고는 그들의 분노를 당의 안팎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활용해 왔다.

민주당의 위기는 구조적인 것이다. 이해찬 전 대표 이래 민주당은 권리당원 제도로 김어준에게 세뇌당한 극성분자들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이들이 당내의 이견자를 배척하고 당밖의 비판자를 핍박하니 피드백 시스템이 마비될 수밖에. 그 결과 진보와 중도의 합리적 계층이 떠나버린 것이다.

정보를 움직이는 음모론

김어준은 음모론의 대명사로 통한다. 천안함 좌초설, 개표 조작설, 세월호 고의침몰설 등 그동안 그는 크고 작은 수많은 음모론으로 대중을 현혹해 왔고, 정부와 청와대에서는 그것을 통치에 적절히 활용해 왔다. 그 결과 당·정·청과 지지자 모두 음모론적 사유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얼빠진 음모론 교주의 특이한 사고방식이 아예 국정마저 집어삼켰다. 검찰개혁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은 ‘검찰 쿠데타’ 음모론. 채널A 사건과 한명숙 사건에서 수사지휘권 발동의 근거가 된 것 역시 음모론이었다. 이는 검찰총장이 임기를 못 마치고 사퇴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

김어준은 특유의 음모론 모드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공격했다. 기자회견의 배후에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투다. 박영선 후보가 2차 가해자들을 캠프의 전면에 내세운 것도 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능한 일이다. 음모론은 이렇게 시민의 로고스(이성)을 마비시키고 사회의 에토스(윤리)를 파괴한다.

보다 못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입을 뗐다. 그는 “권력형 성범죄 때문에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됐는데도 선거 과정에서 2차 가해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무너진 로고스(상식)와 에토스(정의)의 회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들의 투표가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무학의 통찰

김어준에 대한 신뢰는 그에게 어떤 신비한 인식능력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그 자신은 그걸 “무학의 통찰”이라 부른다. 무학에서 통찰이 나올 리는 없고, 그 통찰이란 게 실은 점쟁이의 영험함 같은 것이다. 음모론을 남발하다가 그중 몇 개만 맞추면 대중은 오직 그것만 기억하는 법.

계속 틀리던 예언이 어쩌다 적중하면 그 신비한 인식능력에 대한 대중의 신심은 깊어진다. 그는 자신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논리적이 아니라 종교적 성격의 것임을 안다. 그래서 제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도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다. 사과는 교주의 무오류에 대한 신앙을 깨기 때문이다.

지성과 지식인을 불신하는 반(反)지성주의는 선동가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들은 이성에 대한 열정의 우위, 논리에 대한 직관의 우위, 사유에 대한 행동의 우위를 믿는다. 지식인은 현실에 논평이나 하며 대중에게 잘난 척이나 하지만, 자신들은 대중과 더불어 현실을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대중을 지성계로부터 차단한다. 대중은 우중(愚衆)이 된다. 이를 제지해야 할 지식인들마저 거기에 굴복해 버렸다. 이 나라의 대표적 ‘어용지식인’은 김어준을 “천재”라 추켜세웠다. 그러니 합리적 담론 대신에 선전선동이 공론장을 점령할 수밖에. 하지만 그게 오래 가겠는가?

선전으로 형성된 강철대오

지금 40~50대는 여론의 ‘섬’이 되었다. 이들은 대학시절에 접한 운동권식 사고와 어법에 친숙하다. 반면, 운동권 문화를 모르는 20~30대는 다른 정치성향을 보인다. 박영선 후보는 그런 그들의 부족한 역사의식을 탓한다. “20대는 과거의 역사에 대해 40대와 50대보다 경험치가 낮지 않나.”

상징적으로 말하면 지금 민주당을 지탱하는 것은 ‘전대협·한총련 세대의 연합’이다. 그중 40대는 거의 10년 동안 김어준에게 뇌를 폭격당해왔다. 이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면 정권은 레임덕에 빠지고, 정권 재창출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김어준 없는 아침이 그들에게는 ‘공포’로 느껴지는 것이다.

세뇌는 무서운 것이다. 나치 시절 독일인들은 각 가정에 설치된 라디오를 통해 하루 종일 선전방송을 들으며 살았다. 그 효과가 얼마나 집요했던지, 훗날 연합군 전략기획국에서 “독일의 저항의지를 꺾은 것은 그들의 군사력이 아니라 그들의 선전기구를 무력화했을 때”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급했나 보다. 상왕이 돌아왔다. 이해찬 전 대표가 제일 먼저 찾은 것도 김어준. 그의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거의 이긴 것 같다.” 패망의 순간까지 세뇌된 독일인들은 전세를 역전 시킬 기적의 무기(Wunderwaffe)를 믿었다. 민주당의 분더바페는 ‘샤이 진보’다.

김어준을 어찌할 것인가

순수 공익의 관점에서 그의 방송은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자정은 불가능하고, 방통심의위의 구성상 왜곡·편파 보도의 견제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옳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제 퇴출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순수 정략의 관점에선 그를 내버려 두는 게 좋다. 당·정·청과 지지층을 초토화시켜 민주당을 위기로 몰아넣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그다. 대선을 앞두고 그가 말아 먹을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는 민주당의 엑스맨, 아니 엑스 슈퍼맨이다. 더 좋은 것은 민주당에선 이를 모른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사과를 한다. “정책도 정책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정부, 여당의 잘못된 자세였다.” 네거티브를 해도 지지율이 안 오르나 보다. 민주당은 반성과 자성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민주당의 말을 믿지 말고 조국 전 법무장관의 말을 들으라.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먹을 준비를 할 때고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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